자전거는 차도와 인도 사이에서 방황하기 마련이다. 본래 차도에서 타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느린 자전거를 동급으로 쳐주지 않으며 간혹 울화 섞인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그걸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사람들 사이에 섞이겠다며 인도로 옮겨가는 자전거는 생각보다 많다. 그나마 사람들은 너그럽다. 인도에서 자전거 때문에 경로가 흐트러지거나 놀랄 일이 있음직도 한데, 순순히 길을 내준다. 자연에 가까운 것일수록 순하고, 덜 폭력적이다. ‘보행자로의 나’와 ‘라이더로의 나’에도 차이가 있다. 라이더로 길을 갈 때 더 폭력적이다. 성격이 급해지고 예민해지니 운전자를 탓할 것만도 못된다. 방법은 스스로 속도를 제어하는 방법을 찾는 것 뿐. 복잡한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소음과 속도와의 싸움에..
성산 일출봉이 눈앞에 보이는 따뜻한 펜션(해 뜨는 집)에서 하루를 보내니 기분까지 좋았다. 전날, 슈퍼에서 하얀 소주와 과자들을 좀 사가지고 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귤 몇 개를 넣어주신다. 너무 맛있어서 혼자 먹기 아까우시다고. ㅋㅋ 정말 맛있었다. 어쨌든 좋은 기억을 가진 성산항을 출발했다. 출발할 때는 바람이 잔잔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쭉 달렸다. 성산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길은 관광지로 크게 유명한 곳이 없어 좀 쓸쓸하기는 한데, 꾸미지 않은 자연적인 모습이 좋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고. 마지막 날이기도 한 만큼 쉬엄쉬엄 즐기며 가기로 한다. 조금 더 달리자 바람도 세지고 빗방울도 간혹 떨어진다. 바람이 세게 불 때는 내리막이 평지가 되어 페달을 굴려야 하고, 평지는 오르막이 되어 페달을 더 세..
아침에 일어났더니 눈이 곱게 쌓여 있었다. 눈 때문에 기온이 오른 듯했으나 눈이 그칠 것 같지는 않았다. 제주도의 첫눈(한라산 제외)이라고 하는데, 왜 하필 이때에 --; 그래도 우선 출발하고 봐야지. 출발은 했으나 눈이 얼굴을 때려 도저히 달릴 수가 없었다. 급한대로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을 먹으며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안에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 내내 날씨가 이럴 것 같다고 한다. 서귀포에서 오신 분은 그곳은 햇빛이 쨍쨍한데, 이곳은 왜러냐면 툴툴대신다. 아, 우린 어떻겠느냐고- 눈이 그친 듯해서 달리다보면 또 눈이 온다. 위험해서라도 라이딩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점프를 선택했다. 그래도 명색이 자전거 일주인데 싶어서 최대한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튿날, 펜션을 나서는데 아주머니가 "생각보다 날씨가 좋네요. 다행이에요."라고 하신다. 일기예보 보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급화색이 돈다. 제주도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 일단 떠나고 보는 것이다. 이 날도 역시 일주도로와 해안도로를 넘나들며 달리기로 했다. 바람이 셀 때는 해안가는 피하는 게 상책! ㅋ 일주도로는 생각보다 자전거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자전거로 달리기에 열악한 곳은 계속해서 정비하는 듯했다. 달리는 중에 공사 현장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차도를 줄여 자전거 길을 확장하는 건 좋은데, 농사지을 땅을 파헤치는 걸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도로를 정비하는 데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개인이 알 수 없는 '계획'이 있을테니 감나라 배나라 할 ..
출발은 12시 50븐 예정이지만, 노파심에 11시도 되기 전에 공항에 도착해 자전거 꽁꽁 싸매고 놀았다. 2시간 정도의 공백이었는데, 그나마도 피곤한 느낌. 역시 하는 일 없이 논다는 건 소모전이다. ^^; 브롬톤은 작게 접히는 자전거라 따로 박스 포장을 하지 않고 에어캡을 최대한 활용하여 마빅 가방에 넣었다. 공기압 때문에 튜브의 바람을 빼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냥 넣었다. 터지지 않고 무사히 운송되었다. ㅋ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2시가 되어간다. 겨울 라이딩의 단점은 적어도 6시가 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거다. 해가 금방 지기 때문에 라이트만 믿고 있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게다가 인적이 드문 곳은 사방이 새까맣다는. ㅋ 부지런히 달리기 시작했다. 제주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과학은 어렵기만 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암기 위주로 공부하다보니 더 싫어졌다. 싫다고 외면할 수 없는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복숭아를 신선하게 유지해주는 냉장고는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으나, 어떤 과학 기술의 원리가 숨어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적어도 소중한 냉장고를 재미없는 과학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냉장고와 연관시키는 과학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기호와 공식이 난무했을 뿐. 지금 생각해보면, 일상과 무척 밀접한 것이 과학인데, 부러 무관심하게 만들기 위해 과학이란 과목을 재미없게 만든 건 아닌가 의심해본다. 그래야 속이기 쉬우니까. ^^; 그 시절, 그러니까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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