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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다이어리

[길 단상] 자전거 길 따라 제주 한 바퀴

by Dreambike 2010. 12. 19.

자전거는 차도와 인도 사이에서 방황하기 마련이다. 본래 차도에서 타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느린 자전거를 동급으로 쳐주지 않으며 간혹 울화 섞인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그걸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사람들 사이에 섞이겠다며 인도로 옮겨가는 자전거는 생각보다 많다. 그나마 사람들은 너그럽다. 인도에서 자전거 때문에 경로가 흐트러지거나 놀랄 일이 있음직도 한데, 순순히 길을 내준다. 자연에 가까운 것일수록 순하고, 덜 폭력적이다. ‘보행자로의 나’와 ‘라이더로의 나’에도 차이가 있다. 라이더로 길을 갈 때 더 폭력적이다. 성격이 급해지고 예민해지니 운전자를 탓할 것만도 못된다. 방법은 스스로 속도를 제어하는 방법을 찾는 것 뿐. 복잡한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소음과 속도와의 싸움에 더 노출되는 일이다. 반면, 제주에서의 라이딩은 마음만 먹으면 제 속도에 맞춰 여행을 할 수 있다.

 


제주도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수월하다고 전문가(?) 혹은 경험자들이 추천하고 있어 그 뜻을 따랐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다 그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을 몇몇 봤기에, 타는 내내 건너편 길을 유심히 살폈다. 내가 선택한 시계 방향 길은 자전거 길이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반면, 반대편은 길이 좁고, 매끈하지 않으며, 심지어 길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차가 없을 때야 상관없지만, 속도를 내며 달려오는 차를 피하기 난감할 수 있겠다.

 


제주도는 자전거 길 정비중이다

공사 중 표지판에 <자전거 길 조성을 위한 공사>라고 쓰인 것을 여러 번 봤다. 특히 일주도로와 해안도로가 그렇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었기에 다른 길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 어쨌든 제주도 일주를 위해 자전거를 끌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인프라로 볼 수 있겠다. 자연에 가까워지자고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 길을 만들면서 자연을 해치는 것이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엔진 소리 대신 페달 돌리는 소리가 모여 화음을 이룬다면 자동차 여행 일색인 것보다는 나은 일인 건 틀림없다.

김영갑 선생님의 ‘섬에 민박이 생기면서 섬 고유의 색깔이 사라졌다’는 글이 생각난다. 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 흘려 일을 하고도, 가을이면 겨울날 양식 걱정에 좁쌀 한 톨도 아끼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옷가지만 있어도 부족함이 없었던 섬마을에 전화가 들어오고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섬의 문화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쓰여 있었다. 민박, 펜션, 호텔 등이 우후죽순 생기고, 관광객을 위한 유채꽃 밭이 조성되고, 관광객을 위한 수많은 박물관이 지어지는 것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싶기도 하다. 제주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 지방 고유의 문화를 엿보기 위함인데, ‘관광’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많아지고, 꼭 제주도가 아니어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거다. 김영갑 선생님, 제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전거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다

길을 지나던 중에 귤을 판매하고 있어 귤 오천 원 어치를 샀다. 아주머니가 추운데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셔서 염치 불구하고 몸을 좀 녹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귤 밭에서 사진 찍을 때 돈을 받기도 한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단으로 침입하여 사진을 찍고 귤을 따 먹고 했으면 그런 발상을 하게 됐을까 싶기도 하다. 또, 귤이 저절로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요즘은 빨리 팔기 위해서 익지도 않은 귤을 따서 열로 익히는 경우도 많다고. 아주머니네 귤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 그런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정말 맛이 좋았다. 같은 제주도라도 남쪽이 더 따뜻하기 때문에 남쪽에서 재배한 귤이 더 맛있다고 하니, 여행 계획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게스트 하우스에서 수능시험을 끝내고 여행을 떠나온 재수생과 이직을 준비하는 자칭 백수를 만나 긴긴밤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주로 올렛길을 걸으며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관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두 사람이 여행 동반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만난 지 10분 된 사이였다. 여행의 힘인 것도 같고! ^^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렛길을 이용하는 여행자가 많아지다보니 짐이 짐이 되는 현상이 발생, 이를 해결하고자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이 숙소에서 저 숙소까지 짐을 옮겨준다고 한다. 올렛길이 만들어낸 新직업이로다. ㅋ 



자동차에 갇혀 여행할 때에는 길을 세세하게 기억할 수 없다. 스쳐지나간 사람도 그렇다. 하지만 자전거 페달을 스스로 돌려 가는 길에서 만난 것들은 전부 기억하게 된다. 또 사람들과 훨씬 가까워진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제주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자전거가 힘들다면, 걸어서 하는 여행도 좋겠다. 걸어서 하는 여행은 더 세밀하고 역동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