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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다이어리

한국 예능에 채찍질한 <무한도전 레슬링>

by Dreambike 2010. 9. 5.

매주 토요일 오후 무한도전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는 시청자라면, 무한도전의 버라이어티한  도전에 빠진 게 틀림없다. 예능이 넘쳐나는 현실이지만 ‘기획’이 보이는 예능으로 무한도전만한 게 없으니. 어쩌면 무한도전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도 넘보지 못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1년 프로젝트 <무한도전 레슬링> 편을 보면서 이런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그 어떤 예능이 우리를 침 삼키는 것까지 참으며 숨죽이게 만들겠나 싶었으니 말이다.



예능을 사랑하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요즘 예능
나는 사실 좀 진지한 편이다.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진지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그런 성격이지만, 예능 사랑은 참 유별나서 주변 사람들도 알아챌 정도이다. (^^) 그랬던 내가 이제 보는 예능이라고는 무한도전과 1박 2일(가끔은 억지춘향으로 보는 편)이 전부다. 아무리 심심해도 채널고정이 안 되는 정도로 수준 이하인 것. ‘기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컨셉’ 없이 시작되어 소리없이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수두룩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가 하도 심해서 정치적 음모가 아닌가 의심중이다. 생각없이 텔레비전에 눈만 박고 있으라는 모종의 음모 말이다.

예능계에 매서운 채찍 날린 무한도전 레슬링
맴버들은 장난처럼 고른 도전 프로젝트인 레슬링을 채리필터 드러머 손스타를 영입해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습해왔다. 때로는 장난인 것처럼 웃어가며 연습했고, 때로는 이 악물며 최선을 다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드디어 뚜껑이 열리자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에 눈물을 보이며 감동했지만 일각에서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무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통증 때문에 허리를 세우는 것조차 힘든 정준하와 어지럼증과 구토를 유발하는 뇌진탕에 괴로워하는 정형돈을 보면서 눈물까지 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편한 시선에 앞서 이 프로젝트는 요즘 예능에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들끼리 모여 매일 야구하고, 매일 복불복하고, 사랑의 짝대기 날리고, 알까기하고, 아이돌 숙소에 찾아가 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모든 예능이무한도전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매너리즘에 빠져 비슷한 웃음을 유발하는 예능은 지겹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보면, 대중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독 무한도전에서 더 돋보이는 맴버들

참 이상하다.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정준하, 하하, 박명수, 길 모두 무한도전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해피투게더나 런닝맨에서의 유잭석보다 무한도전에서의 유재석은 더 웃기고 더 매력있고 더 스마트하다. 우결의 정형돈보다 무한도전에서의 정형돈은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 캐릭터로 차근차근 매력을 쌓아 말 그대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놀러와나 여걸식스에서의 노홍철보다 무한도전에서의 노홍철은 정신병원에서도 의아해한 캐릭터를 너무 잘 살리고 있다. 하하몽쇼에서 엄마 분장을 하고 아이돌 숙소를 전전하는 하하보다 무한도전에서 내공을 키우며 매력을 발산하는 하하가 더 멋있다. 정준하, 박명수, 길 모두 마찬가지이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제작진의 고민이, 맴버의 조합이 힘을 실은 것이라고 할밖에..

무한도전 레슬링에서 보여준 각기 다른 매력
무한도전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찾아내 빛나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봅슬레이가 그랬고, 복싱이 그랬다. 우리는 무한도전을 통해서 그것들에게 다른 시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예능은 말과 몸으로만 웃기고 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레슬링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예능에서의 시도는 웃음도 함께하겠다는 다른 의미이다. 그 가운데서 돋보이는 자가 있고, 또 당연히 뒤처지는 자가 있다. 고통을 견디는 자가 있고, 못 견디는 자가 있다. 용감한 자가 있고, 겁 많은 자가 있다. 괜찮다고 말하는 자가 있고 힘들다고 고백하는 자가 있다. 그건 차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아파 겁먹고 몸 사리는 박명수를 욕할 것도 없고, 실력이 늘지 않아 장난만 치는 것 같은 길을 비난할 것도 없다. 다 너무 열심히 하는 캐릭터였다면, 다 용감하기만 한 캐릭터였다면, 그게 또 무한도전이겠는가 싶다.



동고동락 5년이 만들어낸 그들의 닉네임

서로를 가장 잘 알기에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아무리 급조된 거라 해도 깊이가 있는. ^^ 이번 레슬링을 통해 만들어진 닉네임이 그랬다. 종아리 한뼘 허벅지 한뼘 온 몸이 네 뼘 - 하하, 원 머리 투 냄새 캡틴 몸 곰팡이 - 박명수, 장모 거세게 반데라스 - 정준하, 저쪼아래 - 유재석, Mr. 집샌 물샌 - 정형돈, 입다더요이스키 - 길, 섹시 맵시 퐝문 질환 턱주가리아 - 노홍. 되새길수록 웃음을 자아내는 폭소만발 닉네임이 아닌가 싶다.


무한도전의 의미심장한 도전이 또 한번 자극이 된 것 같다. '무슨 자극까지?'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예능을 바라보는 시각인 걸 어쩌겠는가. 아픈 것 잘 이겨내고,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전한 무한도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