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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공효진 조합의 러브픽션을 뒤늦게 봤다. 요즘 상승세 타고 있는 한국영화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좋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하정우다. (개인적으로 공효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도 역시 공효진! 그랬다. 원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는 따라올 자가 없다) 하지만 하정우는 달랐다. 호불호 자체가 없었던, 그냥 연기 잘 하는 배우 정도로 생각했던 그가 뇌리에 콱 박혔다. 연기 괜찮게 하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주 잘 맞는 날개 옷을 입은 듯, 훨훨 날았다. 사실, 이 영화에 하정우는 없었다. 다만 양방울(구주월이 액모부인을 쓰면서 사용한 가명)이 있었을 뿐!

 

 

겨털 뿐인 영화라고?
영화를 보기 전에 막간 검색을 해 본 결과, 겨털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좀 봤다. 겨털이라고? 영화를 보니 겨털 이야기가 비중있게 나오긴 한다. 사실 이에 대한 기억은 색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순형 배우 탕웨이가 정사신에서 보여준 겨털! 러브픽션 개봉으로 색계가 밀리게 되었다. (^^) 주월과 희진이 첫 섹스를 할 때, 주월은 희진의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깜짝 놀란다. 카 여자들은 털을 깎지 않는다는 말에 여긴 알레스카가 아닌데-라고 하지만 금세 희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썰을 푼다. “난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어. 성격도 털털하다는 소리 많이 들어. 그리고 TV도 디지털이야.” 아, 정말 미치게 웃긴다. 뭐 이렇게 희화화하긴 했지만, 이 소재는 단순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미의 기준이 획일화되면서 여성들의 제모는 필수코스처럼 되어버렸고, 미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처럼 보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겨털,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는 이유는 뭔데? (이런 이야기가 들렸다, 들리는 것 같았다..)

 

왜 다 사랑한다고 말할까? 방울방울해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임?
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한 주월은 결국 구애에 성공! 연애를 하게 된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이후, 희진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 구주월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로맨틱하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특히, 영화제 뒷풀이에서 젊은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고백하듯 자신의 마음을 대사로 읊는 장면은 브라보! 그런 센스와 진심, 유머가 합체를 하면 그 힘은 어마어마해진다. 험악했던 분위기도 한순간에 화기애애~ 희진은 주월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바란다. 그런 희진도 그닥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주월이 사랑한다고 하자 다른 말 없냐고 묻는다. 대부분 여자가 이런 대사를 치면 남자는 당황하기 마련인데, 센스 만점 구주월은 “너를 방울방울해”라고 해서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이런 부분도 어쩌면 세상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부분이다. 연애를 하고 감정이 깊어졌다고 하면,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우리는 획일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단어의 차별화가 대수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것이 시작이 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말미에 희진이 알레스카로 떠나가고 희진을 잊지 못한 주월이 알라스카로 따라가 희진에게 하는 말은 “희진아, 방울방울해”. 크크큭(나만 이렇게 웃긴 건가-) 이 말이 먹힌 건지, 희진도 주월이 좋았던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희진은 컴백코리아~ 주월과의 연애는 계속된다.

 

연애를 못하면 글을 못 쓰나?
구주월은 소설가다. 글을 쓰기는 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희진을 만난다. 희진과 연애를 하면서 그의 타이핑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충격적인 겨털 사건을 겪은 이후, 액모부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게 되는데-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글 때문에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구주월의 심정을 이해할 거다. 고민 - 좌절 - 희열 - 희망 - 또 고민 - 또 좌절 - 또 희망 등의 과정이 이입된다면 영화는 한층 더 재미있어진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 액자 형식으로 보여주는 ‘액모부인’ 자체가 그리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 좀 흠이긴 하지만! ㅋ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상력만으로 글을 쓰기에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희진에 대한 단상들이 펜대로 옮겨져 소설이 완성되는 것을 보면 희열마저 느껴진다.

 

 

울고 짜는 연애담은 싫고, 비슷비슷한 로맨틱 코미디에 신물이 난 관객이라면 분명 반가워할만한 영화, 러브픽션이었다. 소재는 같아도 이렇게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해서 정말 반가웠다. 때로는 찌질하고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멋있는, 이 모든 캐릭터를 잘 소화한 양방울씨를, 정말 쌍방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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