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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리 추천북

피리 부는 소녀시대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Dreambike 2010. 9. 30.

쭉 빠진 몸매에 얼굴까지 예쁜 소녀시대가 나와 춤추는 걸 보니 혼이 쏙 빠진다.
‘아, 부럽다.’
소녀시대의 태연이 최고로 좋다는 남자가 그녀가 왜 좋은지 하나하나 꼽는다.
‘아, 그렇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우리는 TV를 보며, 끊임없이, 부러워하면서 부끄러워한다.

하여, 소녀시대가 입어 유행이 된 옷을 사 입거나, 미용실 언니에게 윤아의 단발머리로 잘라 달라고 하거나, 화장 기법을 바꾼다거나, 다이어트에 필라테스까지 받는다거나, 심지어 성형까지 받으면서 덜 부끄럽거나 덜 부러워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소녀시대처럼 예뻐지기는 커녕 할 게 점점 많아진다. 쇼핑 목록은 점점 불어나고, 병원 방문 횟수도 좀처럼 줄지 않는다.
 
어릴 때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듣기 좋은 피리 소리를 따라 무작정 따라가는 쥐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피리 부는 소녀시대의 태연과 윤아를, 에프터스쿨의 유이를, 요즘 한창 물오른 신민아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뻐서 주목받는 그들처럼, 예뻐지기 위해 월급 그 이상을 투자한다. 그것이 돈 가진 남자를 얻는 수단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대인관계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그것이 직장생활에 유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예뻐야 대접받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암묵적인 합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생뚱맞게 박민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소설을 통해 못생긴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못생긴 여자의 사랑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질 거라고- 참 대단한 용기다. 나만 해도 김아중이 분한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주인공이 날씬하고 예쁜 여자로 거듭나는 장면에서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처음엔 못생긴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잘생긴 남자가 이상해 보였는데.. 잘생긴 남자가 가진 게 없어서 그렇지 라는 억측까지 서슴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 감정을 지속하기까지 하는 잘생긴 남자가 더 없이 이상해 보였는데.. 그러다가 예쁘게 생긴 여자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잘생긴 남자를 보며 조금은 희망을 갖게 됐다. 결국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시시한지 보여주는 그 잘생긴 남자 때문에 잠깐, 행복했다. 줄곧 못생긴 여자에게 보냈던 시선도 무색해졌다. 못생긴 거, 그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부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부와 아름다움을 갖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끝없이 부러워하고 욕망해 왔다. 절대적 진리가 되어버린 그것을 쫓으며 세월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사회가 규정하는 부자니 미인이니 하는 잣대를 시시하게 만들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부와 아름다움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에게, 돈이나 예뻐지는 것 말고 다른 좋은 것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우리에게 주는 각성제 같은 소설일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좀 우울해졌다. 작가는 분명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그 희망과 조우하기에 이 사회는 너무도 정형화되어 있었고, 이 사회 속의 사람들 역시 관습에 꽁꽁 묶여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 우울하게 했던 것은 나도 다르지 않다는 무거운 현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책이 세상에 나와, 각성제 한 알 삼킬 수 있어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저자의 말에서처럼, 소녀시대 따라하기는 이제 그만두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더욱 가치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주옥같은 말들이 하도 많아 옮기기에 버겁다. 소설을 읽는 동안 노트에 옮겨놓은 글과 책 뒷표지의 글이 겹쳐 그것을 옮기며 마무리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