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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리 추천북

『고등어를 금하노라』그 가족의 별세상

by Dreambike 2010. 11. 13.

주변에서 이런 가족을 만난다면 궁상스럽다고 생각했을까? 친하기까지 했다면 말리려 들었을까? “한번 사는 인생 폼나게 살자, 그렇게 찌질하게 굴지 말고. 응?”하고 말했을까? 감히, 그러지 못했을 거다. 난방을 하고는 답답하다며 문을 열어놓는 우리가, 옷장에 옷이 가득한데 입을 옷 하나 없다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백화점을 찾는 우리가, 가까운 가게와 시장 두고 대형마트까지 가며 굳이 자동차 끌고 나가는 우리가, 그렇게 편하게 사는 것에 익숙한 우리인데 말이다. 학력도 빵빵한 부부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그들은 가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의식주를 비롯해 부부 관계, 아이들 교육, 일에 대한 성취까지도 철저하게 계획적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혜지와 그의 남편, 아들, 딸은 독일에서 살고 있다. 남편은 물리학 박사로 첨단 기기를 개발하는 독일 회사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을 관리하는 일보다 직접 창조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보람도 있다며 승진할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고 한다. 아들 역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데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 돈 쓰는 일도 없고 연애에도 별 관심이 없다. 학창시절 내내 학생회니 합창부니 밴드부니 특별활동에 바쁘더니 대학 시험을 앞두고는 취직까지 했다. 딸은 식구 중에 유일하게 술도 마시고 디스코텍에도 다닌다. 입고 싶은 옷이 많아 용돈이 늘 모자라는 멋쟁이다. 식구 중에 자기 하나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믿고 있고, 괴상한 집안에 태어난 돌연변이의 인권 투쟁에 유년기와 사춘기를 홀딱 다 바쳤다. 재미있는 구성원 아닌가.

돈이 없어 행복한 그녀
“내 인생이 편안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돈, 돈 하는 세상에서 돈이 없어 인생이 편안하다고 배짱 좋게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사람은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 생각하고, 내 노동력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주의. 하여, 가족과의 식사를 포기해야 할 만큼 멀거나 힘든 일은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말하면서.

그들이 먹고 사는 법
가족(딸 빼고)은 옷을 거의 사지 않는다. 몸매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도 옷을 사는데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먹는 데 쓰는 돈을 아끼지는 않는다. 다만, 변태적 음식(먹을 것이 풍부한데도 건강을 위한답시고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먹는 일, 제철 과일 보다 싼 수입 과일을 먹는 일 등)을 거부하고,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를 즐긴다. 아이들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식탁에서 배웠다.”고 말할 정도니, 대화가 가득한 식탁을 지키고 싶을만하겠다. 집을 사느라 애쓰지 않고 가구 등도 직접 만들어 쓴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난방과 냉방을 과감히 포기했으며(간헐적으로 사용), 물을 낭비하지 않고, 제철 야채와 과일을 사 먹고, 철저하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자식에게 모든 걸 맡기는 교육 
난독증이었던 두 아이들. 그 때문에 많은 것이 더딘 두 아이들을 보며 답답하고 조급할 수 있었을텐데,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눈 덕분일까?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도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도록 말이다.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글을 세 살에 깨쳤는지, 일곱 살에 깨쳤는지는 나중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었을 때 글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얼마나 즐겨 사용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 공부에 취미 없는 사람이 대학에 다니는 것 만큼 실패한 인생도 없는 거고, 남들 다 한다고 어설프게 진학하는 것보다는 기술 하나 똑 부러지게 배우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결국, 두 아이들은 세속적인 성공을 부추기는 사회에 속해있지만, 그 안에서 제 길을 찾아 더듬거리며 갈등하고 있다. 철저히 제몫으로 말이다.

사례를 하나 더하자면, 두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꽤 좋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 바람에 휩쓸려 영어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은 말 그대로 영어 천하 아닌가. 아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가 필요했고, 그래서 공부하게 되었다. 딸은 국제기구에 입사하고 싶은데, 영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필요를 느꼈고 해외연수를 통해 영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영어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단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같은 거였고, 그 열망이 크니 빨리 배우게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주변의 영어 공부는 어떤 모습인가.

독일에서 한국 국적으로 산다는 것
독일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눈(시각)’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읽는 동안 사뭇 진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독일 나치의 역사는 그들에게 아킬레스건이다. 시간이 흐른 후 유태인에게 사과와 보상을 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목적으로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제 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은?’이라는 생각할 즈음 그녀가 일본 기자를 만나 일본인의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한 견해를 엿본다. 일제 강점기가 한국인에게는 문화 말살과 수탈의 시대였지만, 일본인에게는 한국인 다수의 지지를 받은 한국 근대화 과정이라고 알고 있는 것. 과거를 돌아보는 두 나라의 다른 입장을 보게 된다. 역시 과제로 남는다.

또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독일에서 자신이 겪은 모욕감과 외국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로 인해 겪게 된 상처를 말한다. 그리고 한국의 이주민에 대한 태도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외국인과 화합해 더 풍요로운 문화를 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지, 그들을 하대하고 배척한다면 그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참 중요한 교육에 대한 문제도 언급한다. 독일은 평범한 재능을 특별한 실력이 되게 하는 평준화 정책을 채택했다. 평준화를 우려하는 시각은 당연하다. 하향 평준화가 모두의 실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일의 빛나는 사례를, 모두가 따라하고 싶어하는 핀란드의 사례를 생각해보라. 평준화는 아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위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평준화 시스템 때문에 독일은 세계적인 명문 대학의 랭킹에 들지 못한다. 그런 한두 개의 유수 대학은 없지만 대학에서 배출한 인재들 덕분에 독일은 ‘과학 기술 강국’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가. 하향 평준화를 우려하는 한국부모의 태도는 지금 당장 앞으로 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 제 밥그릇 싸움일 뿐,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기는 힘들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무도 아닌 한 여자의 일상과 생각을 쓴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훔쳐서라도 봐야 할 생각인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줏대가 없으면 세상의 논리에 휩쓸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물론 돈은 필요하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의 ‘돈’은 전쟁터의 총알과도 같다. 그래서 가진 자는 웃고 사람을 부리고 떵떵거리며 산다. 하지만 못 가진 자는 굽신거리기 일쑤고 억울해서 눈물 흘릴 일 투성이며 심지어 죽기도 한다. 이 논리를 자기 안에서 뒤집어야 돈이 ‘총알이 아닌 돈’이 된다. 돈에 지배받지 않고,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생활이 바뀐다. 그녀의 가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