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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리 추천북

상위 2%가 아니라면 읽어라! 『가난뱅이의 역습』

by Dreambike 2010. 10. 24.

『가난뱅이의 역습』은 책장에 꽂혀 일 년을 놀았다. 출간 당시 이 책은 여러 경로를 통해 귀에 들어왔고, 단숨에 꽂혀 구매를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넘기니 억지스럽고 재미가 없어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한참 지나서 다시 책을 펼쳤다. 이 책의 추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역시 덮었다. 억지로라도 읽어보자 했는데, 목차의 처음을 차지하고 있는 ‘여차할 때 써봄직한 가난뱅이 생활 기술’부터 마음에 들어와 앉지를 못하는 것. 계속해서 내 마음과 싸우기 일쑤다. ‘이게 말이 돼?’, ‘저건 기술이 아니라, 그냥 구차한 거지!’ 등등. 결국 책장 구석에 방치되고 말았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고미숙 선생님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를 읽었다. 책에 『가난뱅이의 역습』이 언급되어 눈이 초롱해졌다. 선생님은 이 책이 개콘(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어 깔깔 웃어대며 보았다고 기술한다. 뭐, 재미? 반감이 드는 동시에 슬쩍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펼쳐든 이 책에는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 책에게 역습을 당했다. 정말이지 다 읽는 동안 낄낄댄 것 같다. 어떻게 같은 책이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거냐 싶겠지만, 내 상태의 문제였던 것 같다. 일 년 전, 나는 ‘가난뱅이’라는 단어에 반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뭉쳐진 감정들이 이 책을 거부하게 만들었던 것이고 말이다. 현실적으로 ‘가난뱅이’에 사회적 가치를 들이댔을 때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는 힘들다. 돈이 없어 의식주를 걱정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니... 그래서 기어코 중산층에라도 들어보려고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마쓰모토 하지메가 꾸려가는 가난뱅이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렇게 재미있다면야! 저렇게 자유롭다면야! 하면서 말이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현재 재활용 가게인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재활용 혁명을 시작한 것은 부자들을 때려 눕히고, 가난뱅이 계급이 활개를 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신상품은 돈이 남아서 쩔쩔매는 부자가 사게 하고, 가난뱅이들은 부자들이 버린 중고품을 고쳐 유통시킴으로써 바가지 씌우는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나자는 의도이다. “어머, 왜 이렇게 싸.”하고 중고 밥통을 사가는 것이 반체제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면 대기업이 설칠 자리가 없어질테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참신한 생각을 했지?’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그는 누구인가, 바로 마쓰모토 하지메란 청년이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남달랐다. 입학하자마자 ‘노숙 동호회’에 가입해 노숙의 기술을 갈고닦았고,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밥값을 지키는 운동, 일미 군사동맹 강화 반대, 오픈 캠퍼스 분쇄와 대학 측의 각종 규제에 반대하기 위해 찌개 집회, 맥주 파티 투쟁, 카레 데모, 냄새 테러, 페인트 투척 등을 감행했다. 이 골치 아픈 학생을 내몰기 위해 대학에서는 학점을 넘치게 주어 졸업시키려고 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공개된다. 졸업 후에는 ‘크리스마스 분쇄 운동’, 가난뱅이가 설칠 수 있게 하라‘ 등의 슬로건을 걸고 공공장소에서 찌개 끓이기, 경찰 바람맞히기 등 실로 배꼽 잡는 데모를 해왔다. 좀 놀랐던 것은 길목 좋은 데서 데모를 해보겠다고 스기나미 구의회선거에 입후보해 선거판을 가난뱅이들의 해방구로 만든 사연이다. 정말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유머와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부러움이 실린다.

 
 


생각해보게 된다. 가난뱅이가 나쁜가. 돈이 부족한 게 나쁜가. 백화점 가는 대신 중고품 가게에 가서 쇼핑하는 것, 미술관 가는 대신 직접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보는 것, 친구 만나 타임킬링용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대신 자신의 일상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 이렇게 내 생활을 이슈로 만들어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다면, 오히려 부족한 현실이 좋은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보시오! 후지산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에 가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제군, 아직 뭘 잘 모르는구먼! 주머니 털리는 이벤트에서 놀기보다 자기 손으로 만든 축제가 훨씬 더 재밌다구!  - 가난뱅이의 역습 中

우린 명성이 자자한 예술가들이 만든 것, 유형이든 무형이든 돈으로 매매 가능한 것들에 ‘작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구경할만한 것’으로 규정한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왜, 우리가 만들어내는 사소한 것들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가 말이다. 이때 생각나는 책이 채운 선생님의 저서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이다. 선생님은 말한다. ‘네가 행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다’라고!

그러므로 이제 예술을 다 잊어도 좋다. 예술 작품도, 예술가도, 심지어 예술이라는 말까지도. 중요한 건 지금까지 만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건네주었던 지혜와 메시지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세상과 싸우고, 삶을 긍정하고, 기쁨을 만들어내고, 슬픔을 피할 수 있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장애물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을 탐구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몸짓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과 함께 행복을 만들었는지, 그것만 남기고 모두 잊자. 그리고 잊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무기를 들고, 각자의 예술을 꿈꾸자.  -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中

 


마쓰모토 하지메는 이 책을 왜 썼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로는 그가 미디어에 관심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미디어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메는 바쁜 세상이 신경쓰지 못하는 시시한 것들을 쪼가리 종이에라도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가난뱅이 신문’을 만들어 그냥 길에 뿌린다. 바람이 불면 지저분하게 날아다닐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귀찮아서라도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자신의 처지와 맞으면 필요한 정보가 된다는 것. 세상이 가난뱅이에게 필요한 정보로 미디어를 생산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소비'를 조장해야 마땅한 세상이니까 말이다. 미디어라는 게 공부 많이 한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도나도 만들 수 있는 거라고 하니 좀 신나지 않은가.

"흥! 이거 뭐야! 시시해, 답답해!! 말하자면,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해서 이제는 ‘우등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안된 얘기지만, 자네도 이미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아니 현재 일본 사회의 90퍼센트 이상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 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흐음, 이거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 말을 들으니, 그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알겠다. 살아가는 게 힘들다고 지구를 떠날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지구에서 살되,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헤죽헤죽 웃으며 살 게 아니라, 내가 살고싶은 세상으로 바꾸어가는 연습을 하자는 거다. 이 책은 세상의 가난뱅이를 향한 외침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가난뱅이로 즐겁게 사는 법을 함께 연구하자는 거다. 그리고 자꾸 퍼뜨리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