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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가 무거울 때 소설을 읽는다. 소설이 비단 가벼워서가 아니라, 소설을 읽으면 그 징글징글한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다. 스토리란 게 힘이 꽤 세서 지금의 나를 잊게 만들기도 하니까! 다만, 모든 소설이 그런 건 아니다. 해서, 그런 소설을 만나게 되면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좋아서! 『고래』는 그런 반가운 소설이다.
『고래』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2000년대 최고의 장편 소설이 뭐냐 물으면 ‘물으나 마나 고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의 필력에 넋이 나간 사람도 있고, 『고래』 이후로 천명관빠가 되어 그의 지난(혹은 이후의) 소설을 찾아 읽는 사람도 있고, 최고의 소설가로 천명관을 꼽는 사람도 있게 됐다. 뭐, 사실 나도 다르지 않다. 한국소설의 전형적인 패턴에 신물이 나 외국 소설에 빠져들 찰나에 『고래』를 만나 과감하게 리턴을 한 독자이기도 하니까. 나는 이제 곧 <고령화 가족>과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을 게 자명하다. (^^;)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의 수상작인 『고래』는 말이 참 많았다고 한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많은 소설가들 앞에 굉장히 낯선 텍스트를 가지고 나와 ‘이게 소설이요’라고 우겼던 것. 어떤 소설가는 이 낯선 텍스트가 반가워 호평을 했고, 어떤 소설가는 소설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다는 애매모호한 평을 내 놓았고, 어떤 소설가는 흡사 <백년 동안의 고독>과 비슷한데 백년 동안의 고독에는 있는 역사 의식과 같은 게 빠졌다는 혹평을 했다. 그것이 2004년 상황이니까 다 지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 마디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소설이 이래야 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다고! 무엇보다 독자들은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고!
읽는 동안, 책에 자주 등장하는 ‘법칙’이라는 단어에 눈이 갔다. 사랑의 법칙, 유전의 법칙, 유언비어의 법칙, 자본주의의 법칙, 이념의 법칙, 헌금의 법칙, 경영의 법칙 등등- 세는 게 더 힘들 정도로 제법 많이 쓰였다. 처음에는 재밌네, 이거? 하는 마음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조롱’의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이니 관습이니, 상식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조롱 말이다. 어쩌면 ‘소설은 이래야 해’라고 하는 소설의 법칙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뭐,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의 내면에는 분명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더 좋고 ^^;)
(같은 맥락으로) 이 소설의 중심축에는 ‘조롱’이라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고 본다. 소설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인 죽음, 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향해서도 ‘조롱’을 들이댄다. 죽음은 끝이 아니야,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소설 속에서 죽어가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었음에도 자꾸 나타나기도 하고! 춘희가 감옥에 있을 때 무당벌레로부터 별 변태적인 방법의 고문을 당한다. 벼랑 끝에 몰린 것과 다름없는 춘희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감옥이 아닌 세계(점보와 쌍둥이 자매, 文, 금복과 함께 살았던 시절)로 이동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우리는 육체적 자유과 정신적 자유가 함께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체적 억압이 오히려 정신을 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박정희 정권과 남북관계, 이념 갈등, 재벌기업의 횡포에 대해 소설 곳곳에서 조롱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비판이다’라기 보다는 티가 잘 나지 않는 조롱이어서 더 흥미롭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정상적인 것’을 원한다. 그런데 그 정상적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나 싶다. 남성이 되어버린 금복이나, 몸이 너무 커서 성정체성이 사라져버린 춘희나, 생선장수 일을 하지 않음에도 썩은 비린내를 풍기며 평생을 사는 생선장수의 삶 등등. 소설에서는 이것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제단하는 것에 안쓰러운 시선을 보낸다. 동시에 이런 세상의 편견과 비뚤어진 시선에 '조롱'을 들이댄다.
소설의 스케일이 워낙 방대하고, 인물이 많으며, 사건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어 줄거리 같은 것을 나열하기는 좀 힘들 것 같다. 다만 노파, 금복, 춘희라는 세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담이나 괴담에 등장할 것 같은 노파의 잔혹한 복수극을 시작으로, 여성을 상실하고 남성을 얻으며 끝없이 추락하는 금복의 이야기에 이어, 거대한 것이 갖는 비극성을 보여주는 금복의 딸 춘희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들의 삶도 삶이지만, 모두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음울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천명관의 글맛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작가가 옛날 전기수처럼 이야기의 전달자 역할을 대놓고 한다는 것.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다. 한참 금복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 못생긴 노파를 잊은 건 아니겠지?’하며 독자를 깨운다. 혹은 복선을 깐다. ‘그들은 눈물로 이별을 고하며 전기 기술자가 공사를 모두 마치면 다시 돌아와 같이 살자고 약속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춘희의 어린 시절을 통틀어 유일한 친구가 되었으며 그 우정은 이듬해 소년의 아버지가 멀리 남쪽 바닷가로 원목을 실어나르기 위해 평대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두 사람은 훗날 다시 만나 한번 더 특별한 인연을 만들지만 그것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처럼 대놓고 복선을 까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유치하다고 배워왔음에도, 개인적으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아마도, 글을 잘 썼기 때문이겠지. ^^;
한 권의 소설이 대하소설에서나 뿜어내는 아우라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천명관 작가의 복이 아니겠는가. 아니 능력이라 해야 하나. 어찌됐건, 멋있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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