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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소설가의 ‘고래’를 읽고, 소설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라면 모름지기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혹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하고, 매력적인 플롯을 가져야 하며, 올바른 문장 쓰기가 있다고 하는 등. 하지만, 천명관의 소설은 달랐다. 나는 소설의 법칙을 단숨에 붕괴시킨 ‘고래’의 저력에 반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가에게 소설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이었다면 ‘그게 무에 중요해?’라며 자유분방 글쓰기에 환호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류의 들뜬 감각은 내 몸을 통과해 사라진 지 오래다. 천명관 씨가 소설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절대 ‘고래’와 같은 작품을 낳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믿음과 신뢰로 나는 그의 후속작인 ‘고령화 가족’을 읽었고, 오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어떤 측면에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가’로 돌아온 느낌을 주었다. ‘고래’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없었다. ‘고래’가 파격이었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평범하더라는 시시한 비교를 하고 싶지 않다.(사실이 그렇지도 않다;;) 색깔이 다를 뿐, 다른 울림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 그가 보여줄 소설이 궁금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예술가는 데뷔작인 최고작인 경우라고 한다. 데뷔작을 넘어서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과 그것을 써내지 못했을 때의 회의를 견뎌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천명관 작가가 펜대를 놓지 않고 꾸준히 쓰기만 한다면 ‘고래’, 그 이상의 소설로 우리를 놀래킬 거라고.

 

 

서론이 길었다. 하하;;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거치는 과정이 있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를 생각하는 것. 즉 주제 찾기?!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왜 누군가는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그것은 불행을 즐기는 변태적인 가학취미일까요? 아니면 그래도 자신의 인생이 살 만하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일까요?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구원의 길이 보이든 안 보이든 말입니다. 만일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좋은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불행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을 꿈꾸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중략)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 작가 후기 중에서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삶과 죽음, 행-불행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에게 펼쳐지는 위태로운 삶이 어서 끝났으면 했다. 그 정도 힘들었으면 이젠 평온한 일상을 선물받아도 되지 않겠는가 싶었던 거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을 쉽게 안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브루스 리가 겪어내는 혼돈의 삶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야만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지 않았나 싶다. 불행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곧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 외에, 이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 말이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폭력, 죽음, 폭행 등 끔찍했던 소재는, 책을 읽는 동안 차라리 친숙해졌다. 해방감이랄까. 문제의 본질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부모의 이혼에 대한 절망감, 서자의 설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열패감 등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즉, 불행을 규정하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은 내 결함인 것 같고, 서자의 위치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다 줄 것 같고,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져야 해피엔딩이라 말할 수 있는 것. 나는 작가가 이런 불행에 들이대는 정상, 비정상의 잣대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감동을 받았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과 그의 작품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이 모티브가 되어 쓰여졌다. 이 소재들을 주인공(삼촌)과 엮어내는 필력을 보며, 소설가의 힘을 절감했다. 굳이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듯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이천년대를 사회인, 가장, 학생이라는 이름이 아닌 ‘무도인’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천명관 소설가가 직접 쓴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이 선물 받은 기분이란~ 필체마저 멋있다. 얼마 전, ‘지상의 노래’를 쓴 이승우 작가가 '작가 생활 20년이 넘어서야 사람(팬)들이 보인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멋있는 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천명관 작가는 벌써 우리가 고마운 모양이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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