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거머쥔 랜스 암스트롱의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해진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는 사실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겠냐는 심정으로 책을 들었다. 완독 후, 그 이상의 이야기를 찾기 쉽지는 않았다는 결론이지만, 읽기를 잘한 것은 같다. 대필 작가 샐리 젠킨스의 글솜씨가 나름 뛰어난 듯한데, 암스트롱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거나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직업병일 수도 있는데, 암스트롱 개인사도 개인사지만 그 안에서 자전거 이야기 찾는 재미에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읽는 동안은 별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부분적으로 미화된 감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
암스트롱과 자전거
암스트롱은 자전거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어머니의 이혼과 재혼 등 방황하기 좋은 가정 환경에서 그가 참 잘할 수 있는 자전거를 만난 것. 그가 선수가 된 것도 자전거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잘해서 시작했다는 것에서 복선이 깔린다. (^^;) 어린 나이의 그는 트라이애슬론에서부터 클래식 경주까지 두각을 드러낸다. 그것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이어지고, 그는 속도에 미쳐간다.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고환암 선고를 받는다. 폐와 뇌에까지 전이된 상태로 말이다. 그는 일 년 동안 암 투병에 매진하고 기적적으로 완치한다. 암 투병 이전에 근육질의 몸매로 야생마와 같았다면, 그 이후에는 깡마른 몸으로 체력을 키우며 새롭게 시작한다. 그 결과 구간경주나 단거리 경주가 아닌 은근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3주짜리 장거리 경주, 부엘타 아 에스파냐와 투르 드 프랑스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고 하지 않는가. 암 투병이 그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었음은 틀림없지만, 암이 그에게 투르 드 프랑스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로 자전거 주도권을 가진 유럽에서 우승자가 나오곤 했었는데, 최초로 미국에서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의 기록을 세운 것에 큰 의미가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전거 타는 걸 사랑하게 됐다는 게 중요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암스트롱과 사랑
어머니와 아내 킥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암스트롱과 어머니의 관계는 각별해 보인다. 일찍이 이혼을 하고 두 번의 재혼을 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그 가운데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그를 믿고 붙잡아주는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 주요했던 것 같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역사 때문에 더 애틋하고 깊을 수 있었던 모자간의 신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 킥과의 만남, 연애, 결혼, 출산에 대한 것도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낸다. 그에게는 순종적인 여성보다는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여성,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객관적으로 대처하는 여성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에는 가볍게 다루지만 암 투병 내내 곁을 지켰던 연인과는 결별한다. 아무래도 현재의 아내 때문에 자세하게 기술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찬사 일색이라 현실감은 좀 떨어진다. 책 속에서 두 사람은 너무나도 완벽한 인물이다. 허점 하나 없는-
암스트롱과 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 그는 당황하지만 암도 스포츠하듯 이겨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 물론 그의 명성과 부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투병기였다는 생각도 든다. 수술과 항암치료, 완치 후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때로는 오싹하기까지 하다. 암스트롱은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다. 병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어디 감히 내 몸에?’이런 느낌이랄까. 자신의 병에 대해 공부하고, 치료 과정에서도 굉장히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병원에서는 좀 비호감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는 병원에 가면 죄인처럼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하지 않은가. 그 수직적 구도를 파괴한 것이니 말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주변에 알리고 위로를 받는다.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가장 적절한 사람을 골라 자문을 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내 주변만 해도 자신의 병을 감추고, 혼자 속앓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주변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그가 빠르게 완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좀 나쁜 생각이긴 한데, 암 투병의 시간이 그에게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좀 가혹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게 필요했던 것. 언론도,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지인도, 하물도 자신도 제어할 수 없었던 그를 성숙하게 만들어줬으니 말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은퇴 이후 2009년 복귀한 암스트롱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2009년에는 3위를 차지했다. 고환암 완치 이후 산악 구간에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혼신의 연습을 거듭했고, 그것을 강점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제 40살이 다 되었으니 젊은 피를 가진 경쟁자들을 쉽게 물리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2010년! 마지막 출전이었던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23위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라디오쉑 팀은 첫 출전에 팀 1위를 차지하는 성적을 이뤄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또 하나의 가능성을 남긴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이 긍정적인 것은, 극복하기 힘든 병을 가진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거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의 그를 보고, 질투하기에 앞서 닮고 싶어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