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거 책

스피드 먹어버린 <스피드 도둑>

by Dreambike 2010. 8. 22.
과학적 시스템을 적용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는 선수로 물개 박태환과 빙신 김연아를 들 수 있겠다. 물론 다른 스포츠도 그렇겠지만, 둘은 연습 장면이 언론에 노출된 바 있으니 굳이 언급을 해본다. 한 마디로 돈을 많이 들여서 훈련을 하다보니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게 되고, 서서히 주목을 받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선수의 집념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피드 도둑> 주인공 노노무라 테루의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의 스토리와는 별개라 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어릴 때부터 어른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제1, 제2 언덕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며 실력을 키운 것. 몸이 기억하는 그 실력은 클라이머로서의 테루를 최고로 만든다.

 


스피드 먹어버린 '스피드 도둑' 
자건거로 동네의 높은 언덕만 오르내리던 주인공 테루가 카메고 사이클부에 들어가면서 최고의 파트너인 유타와 하토무라를 만나게 되고, 대회를 통해 헤리스와 마키세, 사카마키와 츠게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사이클을 더 알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일본 최고의 대회라 할 수 있는 '투르 드 오키나와'에 출전하여 승부를 가리는 내용이 주요하다. 총 18권에서 반 정도는 '트루 드 오키나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지니 말 다했다. 한 대회를 집요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열정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중간에 살짝 지루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만화에 비하면, 이처럼 대회를 줄기차게 그려내는 투지를 높이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언덕을 오르는 테루처럼, 작가도 그런 심정으로 그린 것 같다. 스피디하게 내용을 전개하지 못해 만화 자체는 스피드를 먹어버린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ㅋ

만화로 익히는 레이스의 맛
레이스에서 스프린터와 클라이머가 두 축이 되어 전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피드 도둑>은 이것을 사실적으로, 눈으로 기억하도록 만들어준다. 아! 레이스를 볼 때 강한 클라이머와 강한 스프린터를 찾아 그들이 펼치는 경기를 관전 포인트로 삼으면 되겠구나. 알게 모르게 학습이 되는 것이다. 또한 경기중에는 파이널 기어란 게 있어서 시프트 다운은 패배를 의미한다는 것, 클라이머에게는 강한 허벅지 만큼 강한 상반신이 중요하다는 것, 괴로움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다보면 운동량에 관계없이 전보다 편안한 상태가 찾아오는 세컨드 윈드라는 게 있다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만큼 레이스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는 의미이다. 상대적으로 개인별 스토리는 많이 약한 편이다. 제로섬 법칙인가-

 
 


억지스럽게 만든 영웅 '테루' 
그런데 나는 주인공 테루에게서 매력을 못 느끼겠다. (이런 걸 봤을 때,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된다는) 18권을 보는 내내 주인공의 일상을, 주인공의 멋진 활약상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이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대형 사고를 당했음에도 몇 달만에 완전히 극복하는 것, 모자란 상체 근력을 단 일주일만에 회복하는 것, 단 한번으로 긴 코스를 빠짐없이 외우고 있는 것 등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 작가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해야 하겠지만, 읽는 내내 미심쩍은 생각이 남아 있다. 차라리 산에 둘러싸여 자전거로 산을 오르내렸던 헤리스나 사이클 선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훈련을 받았던 유타에 대해 애정을 느끼게 되니.. ^^;

'더- 더- 더-만을 강조  
나름 큰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테루와 유타는 경기 규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기기 위해 경기한다. 애쓰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사력을 다한다. 다치면 병원에서 고쳐준다는 것을 알았으니 위험한 레이스도 문제 없다는 테루와 고도의 정신력만 발휘한다면 죽음을 무릅써도 후회없다는 유타. 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건 경쟁심 뿐이다. 더, 좀 더 빨리, 좀 더 세게, 어제보다 더, 지금보다 더, 그렇게 더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한다. 물론 레이스라는 것이 특성상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더'만을 강조하고, 끝까지 그들에게 레이스가 무엇인지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랜스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읽으며 투르 드 프랑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보다 가까운 일본에서 트루 드 오키나와를 먼저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투르 드 코리아'를 소재 삼아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소박하고 예쁜 이야기도 좋지만, 이처럼 하나의 소재를 물고 늘어지는 이야기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