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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자극적인가? (하하;) 전습록이 직접 그렇게 말했다는 건 아니고,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실용서 출판 시장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진리를 구하기 보다 돈 버는 법, 연애 잘 하는 법, 승진하는 법, 인간관계 맺는 법 등을 배우기에 바쁘다. 고전을 통해 옛사람들의 말에 빠져들 시간 따위는 없다. 먹고 살기 바쁘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래도 될까? 답을 하자면, 실용서는 우리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이에게 똑같이 좋은 삶이란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랑의 기술을 배워 적용했다고 하자. 과연 그 결과가 같을까? 그럴 수 없다. 사람도, 상황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전습록에서는 말한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에 직면하라고.
왕양명은 젊은 시절, 용장이란 곳으로 좌천되어 내려간 적이 있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양명에게는 고역이었다. 양명은 고민한다. 성인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묘족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과 더불어 살려고 했을까. 각종 독사와 독초들에 대해 연구하고 방제작업을 서둘렀을까? 이러저런 고민을 하던 중 깨달음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그 답은 다른 성인에게 있지 않다는 거였다. 양명과 똑같은 고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성인은 없다는 것! 고로, 그 답은 자신 안에 있었다. 양명에게 용장에서의 삶은 위기인 듯 보였지만, 그곳에서 깨달음이 시작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되었다 해야 할까!
왕양명, 전습록, 공자, 이탁오, 심즉리, 격물, 치양지, 무선무악, 지행합일 등등. 단어만 들어서는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런 말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전습록, 앎은 삶이다』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쉽게 리라이팅되었기 때문이다. 고전의 딱딱한 말들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장에 맞게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더 어려운 전습록을 읽을 엄두가 난다. ^^; 이제(이제야?)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공부는 책보다 현장에서! - 일상이 공부
왕양명은 배움을 강조했다. 배움이란, 이제까지의 나로부터 다른 내가 되기 위한 습관을 들이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하게 책상머리에 앉아 책 읽는 것만을 공부로 치지 않았다. 왕양명에게 공부는, 그때그때 내게 일어나는 구체적인 일에서 양지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양지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을 말한다) 양지에 따른 옳은(선한) 삶이란, 사회적으로 옳은 삶이 아니다. 나에게 좋은 삶, 내가 좋다고 여기는 삶이다. 그래서 양명은 내가 나의 양지를 실현한다는 것은, 지금 나의 양지를 통해 새로운 선을 창조하는 문제라 보았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좋은 선한 삶이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대학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고, 청년들은 직장을 위해, 젊은이들은 결혼을 위해, 부부가 된 이들은 집을 사거나 자녀 교육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그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게 뭐가 나빠?'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좋은 삶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고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게 그리는 미래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더 불행한 것은 똑같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담보한다고 해도, 모두가 꿈꾸는 미래는 재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좋은 삶이 아니라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양명은 자기만의 삶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의 바탕은 바로 일상이어야 한다고.
'남'이 없으면 '나'도 없다 - 타자와의 공생
양명에게 최고의 스승은 바로 주자였다. 주자의 학문을 이어받아서냐고? 아니다. 주자는 양명으로 하여금 가장 많은 질문을 일으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은 비록 타자지만, 나를 구성하게 하는 외부이다. 타인이 없으면 내가 구성되기 힘들다. 강력한 타자가 존재할수록 나를 구성하는 힘은 더욱 세진다. 타자가 아니면, 우리는 자신의 극한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는 최대한 강력해야 한다. 선의의 경쟁이란 거, 해봤을 거다. 경쟁 상대를 정할 때 내 실력보다 못한 사람을 정하는 거 보았나? 그렇지 않다. 상대는 나와 비슷하거나 더욱 강력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가 생긴다. 같은 원리이다. 더 나아가고 싶다면, 싸울 친구부터 만들어야 한다. 최대한 센 녀석으로! ㅋ
태산보다 평지가 되어라! - 우리가 찾는 스승
태산보다는 평지이고자 했던 스승 양명은 이렇게 말했다. "태산은 우뚝한 존재다. 위대해 보이고 다른 이를 압도하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고립되어 있다. 그에 반해 평지는 언뜻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평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평지는 우뚝한 태산도 품는다."라고. 실제로 양명학은 유불도에 선을 긋지 않고 필요하다면 그 사상들을 포용했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것이 바로 양명학의 정신이기도 하다. '선 긋기'는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학벌과 지연은 물론이고 종교나 정치 등등 나와 다른 것에 대해 편을 가르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는 성장할 수가 없다.
양명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전복했다. 스승이면서 제자이기도 했던 것. 그래서 그가 즐겼던 것이 바로 강학이다. 이를테면 토론하는 자리를 말하는데, 허물없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같은 맥락으로 양명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양명학을 전파시켰다. 양명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재현해야 할 모범답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뜻이 제자들에게 잘 전달된 듯, 양명학은 그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또 하나의 양명, 이탁오
양명 좌파의 마지막 상상력이라 불리는 이탁오는 53세가 되어서야 성인의 길을 좇기 시작했다. 그는 어떠한 사회적 권위나 권력도 그 자신의 도(道)에 비추어 용납되지 않는다면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하여 이탁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날선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도(道)가 없는 채로, 자신의 이익에 맞게 내세우는 원리원칙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기 입장이란 것이 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 입장이라는 것이 과연 내 생각이 맞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하니까, 시대의 멘토가 그렇게 말하니까, 혹은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어진 입장은 아닌가 말이다. 도(道)라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옛날 말이 아니다. 나의 도(道)란, 손익을 떠나서 선악을 떠나서, 내가 만들어 놓은 삶의 원칙 같은 것이다. 다만 그것이 진심으로 내가 기뻐야 할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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