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덕에 책읽기가 참 수월한 한 달이었습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으세요? 저 같은 경우는 약 두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을 통해 궁금증이 폭발하면서 다음, 그 다음 책으로 계속 옮겨가는 경우를 말하지요. 이렇게 되면, 어쨌든 그 분야에 대한 깊이는 한층 깊어지겠죠.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자! 뭐 이런 작정을 하는 건 아니구요. 다만, 푹 빠져들었다는 증거 되겠죠. ^^ ; 그렇다고 해서 아주 박식해지지는 않더라구요. 하,하하. 두번째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를테면,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뭐 그런)을 쉽게 혹은 흥미롭게 재구성한 책을 좋아합니다. 이런 기획을 가진 책은 고맙기까지 하죠. 왜냐하면 어렵다 어렵다 하는 공자나 맹자의 책들도 그렇고, 니체나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에게도 관심을 갖게 하거든요. 그렇게 조금 친숙해지면 어렵다 느꼈던 책에 접근하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해서, 리라이팅 책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저의 이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준 고미숙 선생님의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란 책입니다.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죠. 출간된지 한 달 남짓 되었을 겁니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구요. 멀게만 느껴졌던 연암과 다산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다른 책으로 꼬리물기가 바로 되더라구요.
제목이 의미심장하지요. '별'이라고 칭할만큼 의미가 있는 두 인물이지만, 각각 다른 지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의미로 해석되네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두 학자, 연암과 다산의 이야기인데요. 동시대를 살아간 두 인물이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인물, 정조도 만날 수 있구요. 연암 박지원이 1737년에, 정조가 1752년에, 다산 정약용이 1762년에 태어났으니까 그들은 서로 만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어떤 만남도 포착되지 않는다는 건 좀 이상하죠. 굳이 따지자면, 노론 벽파인 연암과 남인 좌파인 다산이기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엔 (다만) 서로에게 관찰자적 입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도 있잖아요;; 무튼, 달라서 더욱 흥미로운 그들에 대해 살짝 들여다 보겠습니다.
'물'의 상징 "연암
'물'하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물은, 고도의 응축성을 지니고 있지만 어디든 흘러가고 무엇과도 접속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졌지요. 지혜와 유머를 상징하기도 하구요. 해서 연암의 글에는 지혜와 유머가 흘러넘칩니다. 좁쌀 한 알에서도 우주적 징후를 간파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연암은 지금으로 따지면 프리랜서의 삶을 추구했죠. (그에 비해 다산은 정규직의 삶을 지향했구요. ㅋ) 무언가에 귀속되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노마드의 삶을 추구했으니, 그의 정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죠. 다산처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거나, 계몽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에 붙잡히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겠죠. '옳고 그르다'식의 이분법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있는 거죠. 삶은 행복하고, 죽음은 불행하고, 도둑질은 나쁜 거다 등등 교과서적으로 생각하다보면 인생, 참 단조로워지겠죠. ㅎ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단조로움에 더욱 노출되어 있는데요. 주어진 사고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시다면 연암의 글을 자꾸 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네요.
'불'의 상징 "다산
불은 열정이죠. 심장을 상징하기도 하구요. 물은 흐르는 데 반해 불은 솟구치며, 물은 사건을 꿰뚫는 힘이 있는 반면 불은 어둠을 밝히는 투시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다산의 삶과 글은 마치 불을 상징하게 되겠죠. 그의 글에서는 박학과 격정이 솟구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아내겠다는 결기로 충만해요. 그러니, 『목민심서』와 같은 책을 써낼 수 있었던 거겠죠. 수령(이를테면, 지도자)이 갖춰야 할 덕목을 그렇게 체계적으로, 그렇게 방대하게, 그렇게 빈틈없이 쓸 수 있다니요. 아마도 다산이 가진 기질 자체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다산은 오랜 시간 귀양을 떠났죠. 무려 18년 세월입니다. 그전에는 정조를 태양처럼 섬기며, 나랏일에 바빴습니다. 다산은 무엇이 주어지든 열심히 합니다. ^^; 친구 잘못 사귄 덕(?)에 강진으로 귀향 내려와서 한 일이라곤 오직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거였습니다. 목민심서를 비롯한 많은 책들도 그때 나온 거구요. 그는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걸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훌륭하긴 하지만, 정말 빡빡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산이 가진 열정과 근기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죠. 너무 많은 것들에 노출되어 정신을 놓고 사는 우리, 가끔은 잡다한 것들에 휩쓸리기도 하는데요. 갈대같은 마음으로 한 가지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싫을 때, 다산의 글을 통해 마음 붙잡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에게도 공통점은 있었으니! 바로 니체의 '위대한 건강'입니다. 위대한 건강이라고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병이 없음을 뜻하는 게 아니죠. 극한 상황에서도 정신이 영롱하여 어떤 결과를 내었을 때를 말합니다. 열하일기를 쓸 때 연암은 아프기도 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죠. 그럼에도 『열하일기』를 완성합니다. 다산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신체적으로 허물어져 갔지만, 그 가운데서 『목민심서』라는 방대한 책을 완성하게 되죠. 바로 그 극한의 고비를 넘기는 것, 그것이 위대한 건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고비 정도는 넘겨줘야 『열하일기』와 같은 책, 『목민심서』와 같은 책이 나온다는 의미?! (내용에 대한 공감은 차치하고 말이죠;;) 고전이란, 명불허전의 글이란, 이렇게 탄생되는 것이겠죠.
책을 다 읽고나니, 다산과 연암의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다산의 책중 가장 부드러운 서술을 자랑한다고 하죠. ㅋ)를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도저히, 『목민심서』는 읽을 자신이 없지만...^^ 연암의『열하일기』는 조만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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