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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으로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길 위의 하루키를 보았다. 표정을 잃은 그가 걷기와 뛰기 중간쯤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 이번 마라톤을 끝내면 다시는 뛰지 않으리라, 하는 그런 지친 표정이다. 방 안에 앉아 매일 소설을 쓸 줄 알았던 하루키에게 마라톤이 어울리나? 그런 생각이 앞서지만,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모든 경험은 소설가의 자양분이 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식당을 경영했다. 낮에는 식사를 밤에는 술을 팔았다. 무려 7년 동안 지속되었다니 왠지 의외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꽤 성공적인 케이스였던 모양이다. 그가 전업 작가로 폐업을 하자 주위 사람들이 어렵게 이룬 성공이 아깝지 않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걸 보면. 그는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야쿠르트 스왈로스 팬이었던 하루키가 야구 구경을 갔다가 문득, 소설을 써보자 결심했다고 하는데, 그 시작부터 소설가스럽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준비는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서점에 가서 원고용지 한 뭉치와 1,000엔 정도의 세일러 만년필을 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식당 문을 닫은 후에 식탁에 앉아 새벽까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는 식당을 경영하는 등의 ‘열린’ 시간이 없었다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 회고하기도 한다.

 
 


하루키는 러너로도 손색이 없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을 출간한 이후, 폐업을 선언. 글쓰기에만 몰두하기로 한다. <양을 쫓는 모험>을 다 쓸 무렵에는 살이 올라 스스로가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하루키는 둔한 느낌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하루에 10km 정도를 뛰고, 대회에도 참가하면서 점점 단단해진다. 몸에는 근육이 붓고 쓸데없는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된 것. 그렇게 30여 년을 달렸다. 때로는 달리기에 싫증이 나 트라이애슬론으로 종목을 바꾸기도 했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뛴 셈이 된다. 그에게 달리기는 일부가 되었고, 달리면서 글쓰기 공부를 한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의 글쓰기 내공은 달리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철저한 계획 하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책을 보기 전에 나는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설가라 생각했다. 펜을 들면 바로 글이 나오는 소설 기계와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이것은 오해였다. 그에게 재능이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재능을 발견한 것과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는 것은 그의 빈틈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천부적인 재능 대신 끈기로 승부한 것이 빛을 발한 것. 그는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집중력과 지속력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재능과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고.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의식을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몸에 집중력과 지속력이 자연히 배게 되고, 그 한계치는 계속 올라간다.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알아채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매일같이 쓰고, 뛴다. 미리 쓴 하루키의 묘비명을 보면 그의 가치관이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작가(그리고 러너) / 1949~20**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재능이 부족한 작가 지망생 혹은 고뇌하는 청춘을 위한 멘토링
이 책에는 뛰는 혹은 쓰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는 소설가로서, 러너로서 살아가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이 단순한 사실에 큰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획일적으로, 불필요한 것까지 억지로 배워야 하는 모양새가 우습다 여긴 듯하다.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학교란 학교는 모두 마친 이후 진정한 자기 공부를 시작한다. 번역을 공부한 것은 그가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고, 소설도, 달리기도 모두 좋아서 시작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시켰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같은 맥락으로 남긴 그의 글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 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 by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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