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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3

감쪽 같은 거짓말 『새엄마 찬양』 발칙한 소설이다. 특히 결말은. ^^; 이 결말을 두고 ‘이런 반전을 봤나’라거나 ‘내 이럴 줄 알았지’ 정도의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된다. 솔직히 나는 깜짝 놀랐다. 소설을 읽는 동안은 결말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로워서 ‘이래도 되는 거야?’ 중얼거리며 노심초사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은 요사가 쓴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실전편이라 할 수 있다. 요사는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며 자신만만하게 보여준다. (흔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소재로 하였지만,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요사가 보여준 이것은 문학과 가십거리를 구분짓는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혼자가 된 리고베르토가 루크레시아와 결혼(재혼).. 2011. 8. 28.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렇게 시작했다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 글쓰기 책에는 글쓰는 방법이 없다?! 글쓰는 것에 관심이 많다. 소설을 쓰고 싶기도 하다. ‘이거다’ 싶은 소설을 만났을 때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한 소설에 꽂히면 자연스럽게 글쓰기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소설로 가는 지름길 혹은 글쓰는 기술을 전수해 줄 것 같은 기대 때문일 거다. 지금까지 그랬듯 당연히,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영 퍼센트라고는 말 못하겠다. 간혹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문장을 만들 때 ‘그건 너무 상투적이잖아?’라면서 코치를 하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뜯고 있으면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때?’라며 뻔한 조언을 하기도 하니까. 뭐, 불만은 없다. 내심 그것으로 만족하는 편일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한 방에 통하는 ‘비법’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말.. 2011. 4. 17.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같은 작가가 되는 법 조지 오웰의 명성은 자자하여, 그를 모른 채 성장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듯 와 을 책꽂이에 꽂아두기는 했으나, 손이 가지는 않았다. 전체주의, 세계대전, 파시즘, 민주주의, 식민지 등 무시무시한 단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작가였으니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발간되자, 그때서야 1984를 읽었다. 왠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었다. 세상에는 모종의 법칙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를 수월하게 지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었다는 것. 1984에 나오는 현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분명 이 현실에도 작용하고 있을 거라는 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었다. 조지 오웰의 를 읽고서야, 나 은 그의 방대한 글 중 일부라는 것을 알게.. 2010.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