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왜 타세요?”라는 질문을 받아 본 경험이 있나요? 저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네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거죠. ㅋ; 환경오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 이때, 여가 생활이 필수가 된 이때, 자전거 붐이 일어난 이때, 자전거를 타는 행위 자체는 무척 당연해 보입니다. 운동 삼아, 재미 삼아, 친분 삼아 자전거를 타는 거죠. 자전거가 걸어온 역사에 담긴 사회정치적 함의를 모른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이런 시점에서 자전거를 타야만 하는 이유를 본질적으로 건드리고 나선 이는 로버트 허스트라는 사람입니다. 오랜 경력의 메신저로 살아온 그는 자전거 관련해서 많은 책을 냈는데요. 국내에 번역된 것은 『시티 라이더』와 『우리가 자전거를 타야 하는 이유』 두 가지입니다. 『시티 라이더』의 경우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내용이었는데요. 그때도 여전히 같은 화두(자동차는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이 될 수 없다. 최선은 자전거다)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에는 잠깐 언급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책에서는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어갔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 되겠네요.
먼저, 이 책은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은 유럽과는 상황이 좀 달랐는데요. 오랜 시간 자전거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자전거 붐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죠. 그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자전거보다 빠른 탈것이 나오자 자동차에 올인합니다. 미국답네요. 하하;; 자동차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죠. 석유가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사람들은 자신의 다리를 잃은 것처럼 반응하기도 합니다. 걸을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는데, 당장 출근을 못할 거라며 호들갑을 떠는 건데요. 게다가 자동차 사용자들이 많다보니 도로는 너무나 혼잡합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정체되어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지요. 자동차라는 공간에 갇혀 DVD를 보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어떤 것을 하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네요. 미국인들은 이 풍요로운 상황이 영원히, 지속 가능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석유를 상징하는 에너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지금 제2의 아메리카 드림을 꿈꾼다고 합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해서 미국의 전 자동차 군단에 영예롭게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헐-이죠;) 결국 미국적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게다가 그것이 드림(꿈)이라니요. 그래서 갖가지 계획들이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황당한 정책 투성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수소 연료 전지 개발 계획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물에서 수소를 빼내서 이걸로 연료 전지를 만들어 자동차에 동력을 공급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차에 전기를 직접 충전하면 수소 전기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의 반에 반에 반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에너지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꼴인 건데요. 굉장히 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인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공과 사’를 구별한다는 말, 많이 들어봤던 얘기죠. 사실 공적인 것이라 하면, 전체적이고 조직적이고 합리적이면서 공정한 느낌이 들죠. 반면 사적이라 하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일 것 같구요. 그래서 개인의 일보다 국가의 일에 믿음을 갖는 거겠죠. 하지만, 국가가 하는 일들도 뭐, 다르지 않습니다. 대충 오늘을 수습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홀륭한 내용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거슬리는 면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자동차를 상대로 전투를 치루는 느낌이 있는데요. 이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기 논리에 빠져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건데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자동차는 석유 고갈로 인해 장기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탈것으로 가장 효율적인 자전거를 선택해야 한다.’입니다. 이 두 문장으로 요약되는 내용을 위해 책 한 권을 쓴 셈이거든요. 물론, 그 집중력에는 박수를 치지만, 동어반복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읽는 내내 지치는 감이 없지 않더군요. 두 번째로 거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자전거 예찬론입니다. (자전거 業 종사자로써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지만요;;) 저자는 ‘걷기’라는 행위를 비효율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데요. 걷기라는 것이 자전거에 비해 운동 효과가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편협한 사고라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바로 ‘속도’인데요. 빨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걷기’는 평가절하됩니다.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자전거 관련 책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조금 천편일률적이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주제로 하거나, 정비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거나, 자전거의 역사나 종류에 대해 다루었지요. 하지만, 이 책은 하나의 주제(이를테면, 컨셉)를 정해서, 밀고나갑니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논리를 가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관된 맥락에서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통일된 견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일 거라 짐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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