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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책

길 위의 삶이란 이런 것 『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

by Dreambike 2011. 9. 18.
여행기에도 종류가 있다. 가장 읽기 싫은 여행기는 바로 시간이나 장소의 순서를 지켜 일관성 있게 쓴 것이다. 개인적 취향일 수 있지만 언제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이 유명하다는 책을 대하면 짜증부터 난다.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도 깔려 있다고~ 저자는 몇 월 며칠에 출발해서 어느 지역을 방문하고, 몇 월 며칠에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의 열거를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우선 합격점이었다.

그렇다면『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는 어떤 종류의 여행기일까? 이 책은 미려한 문장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않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을 뻐근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아마도 유스케(저자)의 진심 때문일 거다. 그는 본능적으로 여행을 했고, 여행 중에 겪은 회로애락을 솔직하게 글로 옮겼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것은 따로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것을 발견하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행복에 앞서 세계 평화를 간절히 기원할 정도로 가슴 속에 '사랑'이 많아졌다. 

 
 


그의 여행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볼까? 9살짜리 유스케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 가는 청년을 보고 자전거 세계일주를 결심한다. (멋있어 보였던 걸까?ㅋ) 청년이 된 샐러리맨 유스케는 진짜로 회사를 그만두고 자전거에 오른다. 그리고 무려 7년 반 동안 세계 각지를 떠돈다. 강도를 만나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고, 말라리아 때문에 심하게 앓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마음을 울리는 곳을 다닐 수 있었다 한다.

유스케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여행중에 안타깝게 목슴을 잃은 친구 세이지와 냉소적인 듯하며 정이 많은 짐, 함께 여행을 해도 성가시지 않은 찰떡궁합 기요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왠지 반가웠다.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게 되는 그들의 인연이 꼭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는. ^^ 세계 각국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11개 국어를 할 수 있다는 천재 소녀 터아시아와의 수줍은 데이트, 다리를 잃은 채 힘겹게 딴 버섯을 파는 폴란드 할아버지가 요스케에게 선물로 버섯을 안기는 대목에서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한 쪽 다리에 의족을 한 채로 여행을 하는 용감한 일본 여성인 에이코 등은 여행이 준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은 가장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유스케의 여행이 인상적인 또 다른 이유는 여행의 목적을 정해두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지 않았다는 거다. 그는 즐기고 싶으면 페달을 멈추고 카누를 타며 유콘강을 누볐고, 미국 나바호 인디언의 성지인 모뉴먼트밸리에서는 뷰토를 보느라 4일 동안 텐트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본 피라미드가 사진과 달라 시시하게 느껴지자, 밤까지 머물러 있다가 달빛에 잠긴 검은 피라미드를 보는 등 새로운 감상 포인트를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여행법은 내게 있어 새로움이었다. 대게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1시간 이상 머물지 않는 빨리빨리 습성을 가졌으니 말이다. ^^;

유스케에게 이 여행은 터닝포인트가 된 듯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달라졌고, 일상이 뻔히 보이는 샐러리맨이 아닌 여행을 소재로 글을 쓰는 자유로움이 생겼으니 말이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그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와서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할 것 같지는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