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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책

자전거 여행은 특별한 사람이 한다는 편견을 버려 『자전거로 얼음 위를 건너는 법』

by Dreambike 2012. 5. 8.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이후 많은 자전거 여행 도서를 접했지만 이를 넘어서는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도 『일본 열도 7000km 자전거로 여행하다』와『자전거 다큐 여행』은 오랜 여운이 남았다. (아직 읽지 못했다면 일독을 권한다. ^^) 이처럼 ‘큰’ 깨달음은 없어도『자전거로 얼음 위를 건너는 법』은 내게 특별하다. 특별한 이유는, 이 어마어마한 여행을 끝낸 영국인 롭 릴월이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렇다. 지리교사로 일을 하다가 친구 앨의 제안으로 시베리아 여행을 하게 된 롭은 여행 내내 친구에게 민폐를 끼쳐 시베리아 여행이 끝난 이후에는 이별(여행을 위한 이별)을 제안받게 된다. 속도가 맞지 않고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말하자면 상대의 숨소리도 듣기 싫어진 것. 이것이 꼭 나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들은 헤어져 각자 여행을 하는 내내 연락을 하고 도움을 주고 받았으며, 여행 이후에도 쭉 친구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함께 시작했으니 끝도 함께 해야 해. 이게 더 폭력적이다. (^^;) 게다가 앨에게 의존적이기만 했던 롭은 혼자가 되자 무척 용감해졌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앨과 롭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함께 자전거로 단거리 여행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 제안을 한 것은 롭이었지만 정작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떠난 것은 앨이었다. 앨은 세계의 거대한 땅덩어리 세 개를 남북으로 끝에서 끝까지 일주하고 있었는데, 남은 것은 북아메리카와 아시아였다. 아시아 여행의 뻔한 출발지 대신 시베리아 마가단에서 아시아 일주를 시작하는데, 롭에게 함께 달리자 제안을 한 것. 말 안 듣는 학생들과 씨름을 하며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는 일상이 지루하던 차에 롭은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많은 우여곡절을 남겼다. 여행으로 다져진 건강한 앨과 그렇지 못한 롭이 영하 40도를 왔다갔다 하는 시베리아에서의 여행이 녹록했겠는가. 그럼에도 앨은 불평없이 롭을 기다려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해결사가 되어 준다.  

 

그들이 여행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현지에 있는 사람들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렸다. 얼어죽고 말거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불가능’이라는 단어에 어퍼컷을 날렸다. 우리 역시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불가능과 만나고 있는가. 하지만, 생명을 건 불가능에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너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배낭여행자 숙소에서 나는 덩굴이 그늘을 드리운 뜰에 앉아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 미국인은 자기가 얼마나 영웅적인 여행을 했으며 어떤 위험과 맞닥뜨렸는지 큰 소리로 말했다. 대여섯 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편안히 둘러앉아 자기들의 모험에 대해 점잖게 자랑했다. 나는 대화에 귀를 기울일 뿐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한테 자랑한 것이 전혀 없었다. 길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 by 앨 험프리

 

앨이 나중에 쓴 책 중의 내용이다.(앨은 여행 후 2권의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 앨은 말로써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벗고 평정을 찾았다. 어쩌면 앨은 진짜 어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앨을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하면서도 롭은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여행담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점이다. (크크)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런 일까지 당했어”라며-  여행을 하는 동안 분명 마음이 한 뼘 정도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를 돕기 위해 오지에서 고군분투하는 봉사자들을 만나고, 여행 중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이구나’ 혹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것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자신의 여행을 영웅담처럼 꾸며 자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사랑의 힘으로 달렸다?
롭은 여행을 하던 중에 크리스틴이라는 여성을 만난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힘든 자전거 여행을 왜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게 된다. 롭은 이런 질문을 위해 의례적인 대답을 만들어놓았다. 이를테면 "세상에 대해 배우고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어서요"와 같은 대답 말이다. 그런데 크리스틴에게는 진짜 속마음을 말한다.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고 있을 뿐이라는 없어 보이는 대답을 하고 만다. ㅋ 그렇게 사랑은 시작된다. 앨과의 이별 후에 크리스틴을 만나고 일종의 에너지 같은 것을 얻게 된다. 기운이 빠질 때도 크리스틴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잠들기 전에 일기와 함께 편지를 쓰면서 위로를 받는다. 크리스틴은 가끔 롭의 여행지로 찾아와 응원을 하기도 한다. 만약 크리스틴이 없었다면 롭의 여행은 좀 싱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로맨스 스토리가 약방의 감초처럼 달콤했다. (여행 이후 3년 정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한 듯하다) 사랑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롭의 여행은 3년이 걸려서야 끝났다. 시베리아 마가단에서 출발해 영국까지 28개국 5만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린 것. 21개 언어의 인사법을 배웠고, 그에게 200명의 사람이 잠자리를 제공했으며, 70회의 강연으로 돈을 벌었고, 23,000파운드를 자선을 위해 모금을 했다. 여행 중에 앨이 있었고, 크리스틴이 있었고, 옛 친구와 가족, 길 위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앨라니스라 불리는 자전거와 함께였다. 자전거 하나로 이뤄낸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롭의 시선으로 말하는 각 나라에 얽힌 역사적 스토리다. 그는 책을 읽다가 잠들곤 하는데, 자신이 여행할 곳에 대한 공부 같은 걸 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느끼게 되는 것과 연결시켜 말하는데, 그 내용은 여행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시선이 다 옳지는 않다고 해도- 참고로, 그는 한국에도 방문했다. (^^)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여행을 부추기는 책은 아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험난해서,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아프가니스탄을 과연 지나갈 수 있을까, 영하 40도를 견디며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고도 5000m의 고갯길 10개를 계속해서 오르내릴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도시라 불리는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희망은 보인다. 평범한 교사가 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었음에도 여행은 가능했다. 어쩌면 대단한 걸 준비하고, 다짐하고, 계획해야 여행이 성사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떠나고 보면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저 밑에 살짝 보이는 것이 롭이다. 누더기 옷에 덥수룩한 수염- 게다가 너무 마르셨다. 그래도 근육질일 거다. 틀림없이- ㅋ 새로 만든 명함을 책갈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 명함이 좀 마음에 들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찍어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