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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법을 재차 강조하는, 웰빙의 시대가 도래했다. 해서 우리의 생활도 조금씩 변했다. 조금 비싸도 유기농을 선호하고, 건강에 좋은 재료와 요리법으로 식탁을 채운다. 때로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건강 정보를 찾는 하이에나가 된다. TV, 인터넷 등 접근성 좋은 매체만 있다면 정보 입수는 식은 죽 먹기다. 세상에는 이러저런 병이 있으며, 이런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저런 음식을 미리 섭취해두면 좋고, 험한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매년 건강검진을 하라고 강조한다.
가만히 듣다 보니 앞이 깜깜해진다. 내가 걸릴 수 있는 병은 수백 가지가 넘고, 이런 병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즉, 암 혹은 당뇨 혹은 관절염 등등에 좋은 수많은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하며, 이런 병에 걸렸나 저런 병에 걸렸나 의심해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 벌써 피곤하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다 오히려 병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피곤하기는 해도! 내 몸에 대한 관심은 필요한 법!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 내 몸에 대한 문제를 병원에 맡길 것인지, 내게 맡길 것인지 말이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는 단호하게 나의 몫이라 말한다. 현대의 구조 속에 매몰되어 버린 건강에 대한 지식과 처방이 지겹다면 이 책을 통해 동의보감을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동의보감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처럼 느껴진다. 동의보감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거 너무 어렵지 않아? 또 옛날 이야기 아니야? 라고 생각한다면 곰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 현재를 살고 있는 곰숙 선생님의 동의보감 이야기를 듣다보면 동의보감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임이 분명하고, 지루하기는 커녕 재미나기도 하다. 예전에 들녘에서 나온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을 일독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에도 마지막 장까지 넘기게 했던 것은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기 때문일텐데, 이젠 아는 것이 조금 더 생겼으니 보이는 것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일독 후, 나름 동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조금 정리해보려 한다.
소이에게 세종이 있다면, 허준에게는 선조가 있다 요즘 뿌리깊은 나무를 보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 많을 거다. 탄탄한 스토리에 짱짱한 긴장감이 매회 반복되다보니 이 드라마에도 쪽지대본이란 게 존재할까 싶을 정도다. 우리의 글자이지만 한글에 대해 이토록 깊게 생각을 해봤던가 싶다. 한글 창제와 반포를 둘러싸고 이토록 많은 갈등과 음모, 싸움이 존재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한글을 만들어보자는 멘토 세종이 있었기에 이를 목숨 걸고 추진하는 소이, 성삼문, 박팽현이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은 어떤가? 허준이 당대 명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허준을 능가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우린 유독 허준을 기억한다. 그 이유는 동의보감에 있다. 선조는 허준에게 명했다. 지금의 의서들은 보기도 어렵고 복잡하여 서민은 알아볼 수 없으니, 기존의 의학적 전통을 집대성하고, 양생술을 바탕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의서를 쓰라고. 이 명을 받아 허준은 체계를 잡아 분류했고, 섭생을 강조하는 양생술을 바탕으로 약재의 명칭과 용법을 보급할 수 있도록 의서를 꾸렸다. 40여 년의 긴 여정을 거쳐 탄생된 책이 바로 동의보감인 것이다. 역시, 선견지명이 있는 멘토를 만나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이 특별한 이유는 독창성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의서가 없었겠는가. 동의보감이 수많은 의서를 제치고 대저서가 된 연유는 독창성에 있다. 당시 의서는 주제와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전문가가 아니면 보기 힘들었다. 해서 허준은 이를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 5개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내경편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질병이 아닌 생명과 양생을 제 1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허준은 '고인들이 처방에 넣은 약재의 양과 수가 너무 많으니 가난한 집에서 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결국 하나의 약재로만 이루어진 단처방을 내놓는다. 백성이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동의보감을 항시 보며 자신의 몸을 진단하고 보살피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 병원갈 일이 눈에 띠게 줄어들 것이다. 병원을 찾기 전에 동의보감을 먼저 펼쳐볼지도 모르겠다. ^^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라 자식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라면 주목하라. 요즘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무섭게 빠르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라 이름하는 교육을 받게 되고, 태어나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을 때부터 각종 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는다. 동의보감에서는 말한다. 늦게 말하고, 늦게 행동하는 아이가 더 지혜롭고 더 오래 산다고. 영어나 독서다 해서 어릴 때부터 닦달을 하니 우리 아이들, 숨이나 쉬겠나 싶다.
병을 ‘악’으로 규정하지 말라 병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무섭다. 내 삶을 무너뜨릴 것 같은 악한 기운으로 판단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파야 산다는 말이 있듯, 병은 내 몸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한다. 병에 걸려야 더 강해지고, 병에 걸려야 성숙한다. 병과 함께 살아야지 병을 배척하면 안 된다 말한다.
태과와 불급을 조심하라 많은 것도 부족한 것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뉴스에서 토마토가 암 예방에 좋다고 해서 토마토를 입에 달고 산다면 몸이 소화해내지 못할 것이다.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다. 음식의 섭취도 그렇지만, 생활 방식으로 연결되는 심오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몸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하라 움직일 일이 별로 없다.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하고, 컴퓨터나 게임을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젠 스마트폰도 나왔겠다 정도는 더 심해졌다. 소설 <아리랑>에 보면 옥녀라는 인물이 나온다.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부모를 잃은 득보와 옥녀는 주모의 도움으로 주막에 은신하게 되는데, 주모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소리를 잘 내는 옥녀를 소리꾼에게 팔아버린다. 이에 옥녀는 오빠도 찾고 복수도 하기 위해 명창을 찾아가 소리를 배운다. 이때 집안일도 병행한다. 물을 긷고 밭농사를 직접 하며 힘을 기르는 것이다. 해서 남성 못지 않은 기운을 갖게 된다. 몸을 움직인 덕에 기운이 생기고, 그 기운으로 소리를 잘 낼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공부만 하겠다고 매일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아이는 허약해지기 쉽고, 체력이 약해 쉽게 병들 수 있다. 사무직군의 직장인들은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이로 인해 다양한 질병에 노출된다. 몸을 놀려야 오래 산다.
고미숙 선생님의 글은 크고 작은 울림을 전달한다. 예전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논란에 휩싸였었다. 글이 너무 가볍다는 것. 또 어떤 이는 이해하기 쉽고 어려운 책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줬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이렇듯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해 일상으로 스며들게 한다. 학자들의 어려운 이야기, 메시지를 많은 이들에게 나누려는 의지로 보인다. 이러한 선생님의 행보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선생님 덕에 많은 것을 깨닫고 공부하며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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