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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구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팀 하나 정도는 있을 거다. 야구 시즌이 되면 한두 번은 야구장을 찾거나, 매일 저녁 스포츠 뉴스를 챙겨 보며 이겼는지 졌는지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기도 하고,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어제 야구 봤어?”라며 인사를 나누기도 할 거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승부 이외의 것에, 응원 이외의 것에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것에 관심을 갖는 팬들도 있을까?
저 타자는 날아오는 야구공 크기가 골프공만 해 보일까, 배구공만 해 보일까? (경력이 쌓일수록 구술만하게 보이던 공의 크기가 골프공, 탁구공, 사과, 배구공, 수박 크기로 커 보인다), 저 타자는 야구공 속도를 제트기처럼 느낄까, 자전거처럼 느낄까?, 저 투수는 슬럼프를 라이프니츠 선생의 ‘신성의 끊임없는 전광방사’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마운드에서 ‘신성’을 띠고 있는 건 포수일까?, 슬럼프에 빠졌다고 소문이 자자한 4번 타자가 정작 공을 치지 못하는 건 칠만한 공이 없어서가 아닐까?, 코치들은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에게 주로 ‘머리를 텅 비워’ 혹은 ‘어깨를 펴지 마’라고 말하는데, 정작 아무 소용없지는 않을까? 뭐, 이런 것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런 것들 말이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우리가 야구를 볼 때 주로 관심을 쏟는, 그 이면의 것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야구인 척 하는 야구 비슷한 것이지 진짜 야구가 아니란다.  가짜 야구를 이야기하면서, 진짜 야구를 찾아 떠난 한신 타이거즈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우승을 눈앞에 두었던 1985년, 선수들은 자신들이 하는 야구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됐고, 승승장구하는 팀 분위기와는 반대로 모두 은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사라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야구가 뭔지, 그런 게 있기는 했는지 궁금할 어느 미래에도 한신 타이거즈 선수들은 각각의 방식대로 야구란 걸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에서 야구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을 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정신병원에서 야구팀을 결성해서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불멸의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야구 비슷한 것을 한다면 그것이 야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다. 작가의 발상이 독특하여 낄낄대며 읽다가도 내용을 의심하게 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말씀. 처음에는 작은 단편들로 구성된 것처럼 줄거리가 각각 놀지만, 결국 그 작은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꽤 기쁘다. ^^ 그렇게 말미에 가면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야구에 관한 이야기였고, 1985년 단 한 번의 우승을 기록할 뻔 하고 사라진 한신 타이거즈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읽고 나니 뭔가 모자라, 베껴 썼다. 한 달 정도의 시간과 두 권의 노트 그리고 열정이 필요했다. ^^  

칸트나 라이프니츠를 읽으며 슬럼프를 극복하는 투수, 정신병원에서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은 슬럼프에 빠지지 않았다고, 칠만한 공이 없다고 주장하는 타자, 야구를 알기 위해서는 야구에 관한 시를 쓰고, 토 나오도록 포르노를 봐야 한다는 감독들의 이야기는 생소하지만 신선하다. 그리고 실제로 야구의 세계가 이렇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별 의미 없는 대기업의 이름을 팀 이름으로 걸고, 그 이름을 위해 싸운다. 이 책은 맹목적으로 싸우는 이들에게 승부 말고, 다른 것이 있음을, 있을 수 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더욱 야구 선수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싶다.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야구하는 일이 즐거웠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매년 우승과 연봉이 화두가 되는 야구 이야기도 시시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놓치면 안 되는 게 또 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력이 이력인 만큼 사회적인 관심과 비판 의식을 놓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용인하는 ‘일 혹은 직업’이라는 것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일본 말이 한자 없이는 의사소통할 수 없음을 비꼬고, 너무 많이 알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인텔리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우리가 장애인에 들이대는 비정상이라는 잣대 역시 확실하게 까준다. 이 역시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고, 예상 가능한 소설의 패턴이 지겹다고 한다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를 권한다. 물론 취향의 차이라는 것이 있으니,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


요즘 필사하는 재미에 빠졌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베껴 쓰고 나서는 짧은 단편이라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를 쓰고 나니, 그 기분은 반나절을 넘기지 못한다. ^^ 소설 쓰기라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 하지만 소설 구석구석을 다 훑어본 느낌에 만족하고, 사회 의식이 짙은 이들이 곳곳에 배치해 둔 ‘유의미한 이야기’를 찾아내 공감하는 재미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우선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책 한 권을 읽어내는 속도는 더디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독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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