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요조라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익살을 서비스하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익살을 떨게 된 이유는 인간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인간 곁에서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즉 그의 인생 전체는 오롯이 연기였고, 자신이 만든 극본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찍은 셈이 됩니다. 그런 그도 결말을 예상하지는 못한 걸까요. 말 그대로 그의 결말은 무척 끔찍했습니다. 스물 일곱 살이 되는 동안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는데 죽지 못했습니다. 새치가 머리를 덮고 알코올과 모르핀 중독으로 이가 빠져 겉모습으로만 보면 마흔은 넘어 보입니다. 게다가 외딴 시골에 갇혀 육십이 넘은 할머니와 살면서, 때로는 겁탈을 당하기도 한다니 말 다했습니다.
그는 줄곧 자신이 실격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거지요. 인간답지 못하다 여긴 거지요.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와 틀림없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인간이 아니고, 그만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한 것이겠지요.
그는 세상에서 규정하는 모든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심’을 품었습니다. 왜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가 당연히 고플 거라고 생각하는지, 왜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한다고 이야기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은 간단명료한 이야기를 까다롭고 어딘지 애매모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미묘한 복잡함을 덧씌워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과학의 거짓, 통계의 거짓, 수학의 거짓에 세뇌되어 행동을 조심하며 살아가는 것도 우스워졌습니다. 인간들에게 당연한 것이 자신에게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자, 그는 ‘삶’ 바깥에 서서 ‘삶’을 기웃거립니다.
요조에게 일어난 실질적인 사례를 들어볼까요? 당신은 애인(혹은 아내 혹은 남편)의 정사 장면을 목격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충격과 공포 속에서 방황을 하겠죠? 요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황의 포인트는 여실히 다르네요. 아내의 정사 장면을 본 후, 요조는 유부녀가 겁탈당한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인간다운 해결을 원해서였습니다만 그 어떤 책에서도 요조다운 답을 찾지 못합니다. 책에는 아내의 행위를 남편이 용서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이혼을 하면 될 것이고, 용서할 수 있다면 참으면 됩니다. 하지만 요조는 그런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죄의 원천이 자신이 아내에게서 가장 사랑했던 면, 바로 무구한 신뢰심(아내 요시코는 사람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심성을 가졌거든요)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에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요시코와 결혼하면서 그가 꿀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꿈을 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오바 폭포에 가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요시코와 이혼하고, 폐인이 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됐고, 이후에는 시골집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실격된 인간이라 결론짓습니다. 누가 봐도 그는 인간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조가 지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게 뻔히 그려지네요.
이 책이 쓰여진 느낌으로 줄거리를 옮겨 봤다. 다자이 오사무는 본인의 이야기(사실 <인간실격>은 다자이가 평생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허구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를 옆 사람에게 말하듯이 집필했다. 쉽게 쓰여진 만큼 빠른 속도로 읽히지만, 그 여운은 꽤 길다.
이 책을 쓴 다자이 오사무는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것이 생애 다섯 번째 자살 기도였다고 한다. 자꾸만 죽음의 문턱으로 유혹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내 자신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의 자격이란 무엇인지, 죄는 무엇인지, 죄의 반의어는 무엇인지 말이다. 이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인간 실격이다. 인간의 자격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 대답은 이 책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원초적인 비법이 바로 그 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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