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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삽질했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아무 이익도 보람도 없는 일을 했을 때 우스개 소리로 넘겨버리는 표현 방식이다. 농담거리로 치부되어야 마땅한 ‘삽질’은 말 그대로 참, 하찮아진다. 아무리 열정을 다했다고 해도 쓸모가 없으니 항변하기도 마땅찮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삽질을 멈추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연세대 원주 캠퍼스와 덕성여대에서 <문화 인류학>에 관한 강의를 하며 만난 학생들과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회가 20대를 오해하고 있음을,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성세대가 말하는 20대는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20대가 혁명에 냉소적이라고? 20대, 특히 대학생은 가장 혁명적일 것 같았다. ‘젊음’ 그 자체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어른들은 막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은 자기 스펙을 관리하느라 세상을 돌아보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렇게 비난한다. 입시에 쫓기는 고등학생들도 참석한 촛불시위 현장에서 대학생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정치에 관련된 담론에 쏙 빠진다는 거다. 진보 세력은 대학생이 선거만 해도 세상은 바뀔 거라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들은 너무 잘 알아서, 냉소적이었던 거다. 산으로 가는 촛불시위를 보며 희망을 잃었고, 선거 때는 보수나 진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 주사위를 굴려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혁명에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형태로 진행되는 혁명에 냉소적이었던 거다.
열린교육이라 자처하는 대안교육마저 사기라고? 우리는 공교육이 죽었다고 말한다. 하여 열린교육을 자처하고 나선 대안학교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대안학교를 나온 아이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물론 일반고보다 자신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도 한계는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완곡한 형태로의 강요 때문에 늘 힘들었고, 열린교육을 지향하는 그 자체로 모순된 현장들을 목격해야만 했다고 한다.
20대의 사랑은 계산적이라고? 기성세대는 사랑마저 거래하듯 하는 20대를 용서하지 못한다. 사랑은 인간다울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 하나로 목숨을 걸 수도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20대에게 사랑은, 시작부터 달랐다.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랑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20대의 청년들은 이미 알아버렸다. 당장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텔에 가는 데도 돈이 든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만한 돈도 여의치 않다. 대학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빚은 쌓여가고(부모의 지원이 잘 되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 취업을 위해 쌓아야 하는 스펙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학점만 따서는 안 된다. 학점, 토익, 해외연수, 외모, 수상경력, 봉사활동, 성격 등을 관리해야 하는 그들은 더 센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낭만적이 사랑이 가능하기는 하겠는가 싶다.
돈에 목숨을 건다고?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원하는 공부를 하고, 최소한의 문화적 혜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거라 말한다. 다만 그들이 돈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면 그만한 혜택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돈에 집착하는 것이 탐욕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돈에 욕심을 내지 않으면? 자신이 바라는 최소한의 것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기를 쓰고 취업을 위해, 돈을 향해 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그들에게 삽질이란 게 용인되기는 할 것인가(사실, 대학은 삽질이 제맛인데 말이다)? 삽질을 하는 행위는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연장시키고(곧 등록금이 불어난다), 취업준비생(즉 백수)으로 삶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인데, 이는 곧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을 높이는 꼴이 될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삽질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잠깐! 그 삽질이란 정말 그렇게도 쓸모없는 것일까.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쓸모라는 것은 돈으로 환원되는 모든 것, 즉 결과물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 것들, 재미만을 목적으로 한다든지 자아실현을 위해 밤을 새우는 것들은 말 그대로 취미이고 혹은 삽질이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삽질이 더 가치있는 것들을 생산할 동력이 될 것이고, 세상이 정해놓은 각본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그들의 삽질을 독려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 다양해질 것이고, 20대가 설 수 있는 자리도 넓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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