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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 계급을 제거함으로써 평등을 실현한다. 노동자가 주체가 된다.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 상속제를 폐지한다. 중앙 기획 경제를 지향한다.”

상류층이 아니라면, 노동자로 고단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끌릴만한 이야기 아닌가. 이는 역사상 최초로 일어났던 사회주의 혁명인 소련 소비에트 혁명이 내세운 기치들이다. 기세 좋게 시작됐던 그 혁명도 독재와 부패로 산산조각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 = 비현실적이고 가난한 나라’로 인식하며 어느 정도는 냉소를 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소비에트 혁명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물농장>이다. 스탈린은 나폴레옹, 돼지들은 볼셰비키, 개들은 비밀경찰, 동물 반란은 러시아 혁명, 동물재판은 모스크바 재판, 복서-클로버-벤자민은 프롤레타리아 등을 상징한다. 이제 내용을 살펴 보자. 동물들은 혁명을 일으켜 메이저 농장을 장악함으로써 <동물농장>을 만들었다. 인간에게 학대받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배불리 먹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고, 혁명 당시에는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노볼(나폴레옹과 함께 혁명을 주도하던 돼지)을 제거한 나폴레옹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동물들의 삶은 메이저 농장 주인 존즈가 있을 때보다 더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동물들이 동요할 것 같으면 새로운 구호를 만들어내고, 재판과 학살을 일삼아 공포감을 조성한다. 사고가 생기면 스노볼을 내세워 그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정작 나폴레옹과 돼지 일당은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고, 이를 계기로 충성심을 고취한다. 모든 문서를 조작하여 글을 모르는 동물들을 속이며 노예로 만들어간다. 이렇게 사회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 <동물농장>이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사회주의자인 오웰은 이 책을 통해 사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왜? 그렇다면, 오웰은 사회주의에 등을 돌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오히려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싶었던 것 같다. 힘이 센 복서가 나폴레옹의 주장이 억지스러울 때 <나폴레옹 동무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배급량이 줄어들었을 때 <내가 더 열심히 한다>며 잠을 줄이고 자기 몸을 혹사하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 거라는 거다. 클로버가 처음 동물농장을 세울 때 만든 7계명이 조작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동물들을 자극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다. 모든 걸 다 알고도 몸을 사리던 '브레인' 벤자민이 나서서 동물들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더라면 나폴레옹이 이렇게 쉽게 모든 걸 꿰차고 앉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다. 오웰은 동물농장이라는 개혁이 실패한 데에 동물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그래서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그러니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이 사회주의의 몰락을 그렸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다. 그는 모든 혁명은 반드시 타락한다는 주장을 뒤집고 싶었을 거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과 그의 수하들이 권력을 잡고 독재 정치를 하는 것은 나폴레옹 독자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가 부패한 정권을 휘둘렀을 때, 나머지 동물들은 이를 내버려뒀다. 이상하기도 하고, 의심스러운 면도 없는 건 아니지만, 권력과 폭력에 다칠까 무서워 순응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믿었고, 먹을 것이 줄어도 더 열심히 일했다. 이것이 바로 독재를 더 키운 원인이라는 것이다. 오웰은 책을 출판하면서 ‘독재 일반에 대한 풍자’를 목적으로 한 소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곳이 어디든 독재의 조짐이 보이는데도 대중이 가만히 있는다면 부패한 정권을 돕는 게 된다는 경고이다. 오웰은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던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것이 두려웠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대표되는 소비에트 혁명에 대한 신화를 깨야 새로운 혁명이 발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대놓고 비판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는데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설명했는데, 이는 순전한 이기심 부분에서 발췌한 것이다. 순수한 이기심 외에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 나머지 동기인데, <동물농장>은 순전한 이기심을 기본으로 미학적 열정과 정치적 목적이 결합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정치적 글쓰기를 해왔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열정, 미학적 열정 또한 잃지 않았다. 에세이와 서평 등을 주로 썼지만, 그가 간혹 발간했던 소설들이 이를 증명한다. <동물농장>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소련,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 혁명 당시)을 알고 읽는다면 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준다. 하지만 배경지식이 없어도 충분한 메시지를 남긴다. 아니, 어쩌면 소비에트 혁명에 국한되지 않고 읽는다면, 폭넓은 해석을 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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