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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명성은 자자하여, 그를 모른 채 성장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듯 <1984>와 <동물농장>을 책꽂이에 꽂아두기는 했으나, 손이 가지는 않았다. 전체주의, 세계대전, 파시즘, 민주주의, 식민지 등 무시무시한 단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작가였으니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발간되자, 그때서야 1984를 읽었다. 왠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었다. 세상에는 모종의 법칙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를 수월하게 지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었다는 것. 1984에 나오는 현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분명 이 현실에도 작용하고 있을 거라는 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서야, <1984>나 <동물동장>은 그의 방대한 글 중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동물동장은 그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안겨준 책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그가 남긴 에세이, 칼럼, 서평 등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작품이었다. 29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 안에서 <1984>의 향기를, <동물농장>의 조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면 글로 썼고, 그것이 더욱 깊어질 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죽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정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세이를 습관화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그것을 세상의 현상과 접목하여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점의 추억>, <시와 마이크>, <문학 예방>, <어느 서평자의 고백>, <나는 왜 쓰는가>, <작가와 리바이어던>과 같은 에세이를 외면할 수 없을 거다. 나 같은 경우는 <서점의 추억>과 <나는 왜 쓰는가>를 필사하며 읽었다. 눈으로만 읽기에는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좀 짧기도 했고! ^^) 수많은 서평을 썼던 그가 서평자로서 책을 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때로는 얼마나 비겁하게 일을 하는지, 얼마나 하기 싫어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어느 서평자의 고백>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대중들이 지루하게만 여기는 ‘시’를 친근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라디오를 활용하는 마케터로의 감각을 엿보게 하는 <시와 마이크>도 참 좋았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그가 진정 어떤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 문학인으로서의 향기를 잃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딱한 정치적 상황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는 정치와 문학을 하나로 만드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에서 톨스토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해, 특히 리어왕에 대해 악평을 하자, 오웰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100년이 지나도 대중이 원하는 책으로 남아있다면 그는 위대한 작가라 평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도 셰익스피어지만, 조지 오웰 역시 역사가 기억하고, 대중이 찾는 작가 아니던가. 아직 100년은 안 되었지만, 다 되어가니까. ^^ 정치적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그에 관련된 글을 많이 쓰지만, 그에게는 감출 수 없는 문학적 감수성이 있었고,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감각에 매료된 상태인 것도 같았다. <물속의 달>, <두꺼비 단상>, <정말, 종말 좋았지>와 같은 에세이에서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에세이로 <정치와 영어>가 있다. 오웰이 강조하는 언어의 타락은 지금의 현실을 비껴가지 않는다. 4대 강을 살린다고 하면서 강을 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가둔다. 나무와 습지를 파내면서 녹색 성장으로 포장한다. 분명히 죽이고 있는데, 살린다고 하는 언어적 포장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언어가 타락하면 우리의 정신은 감염된다. 어느 순간, 강을 파헤치는 것을 보면서 ‘강을 살리고 있구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책임한 언어적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주는 글이다. <정치와 영어>는 <1984>에서 던지는 메시지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다.
이 책에는 29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고, 그중 21개는 국내 초판 번역되었다고 한다. 오웰의 글들은 무엇 하나 쉽게 넘기기 힘들다. 요즘 오웰의 글을 자꾸 읽게 되는 건, 오랜만에 만난 진짜 글쟁이어서가 아닌가 싶다.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사는 내내 글과 함께였던 사람이었고, 개인적 감상을 나열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게 무어든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글을 썼다는 것은 분명 배울만한 점이다. 꽤 오랫동안, 이 책이 준 향기를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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