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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드맥스의 배경은 참혹하다. 핵 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한 22세기, 독재자 임모탄 조는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장악해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주인공 맥스는 아내와 딸을 잃고 사막을 떠돌다가 임모탄 조의 소굴로 끌려가 워보이 눅스의 피주머니가 된다. 한편 임모탄의 폭정에 반발한 사령관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다섯 여인들과 탈출을 감행한다. 임모탄 전사인 워보이들이 퓨리오사의 뒤를 쫓게 되는데, 맥스 역시 눅스에게 피를 제공해줘야 하므로 추격전에 동참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맥스는 탈출하게 되고 퓨리오사 팀에 합류하여 임모탄으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퓨리오사가 탈출을 감행한 것은 자신의 고향, ‘녹색의 땅’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임모탄의 여성들과 동행한 것은 굉장히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고, 임모탄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는 의도도 있다. 또, 폭정의 되물림을 끊고 싶다는 희망(이 여성들이 임모탄의 후손을 생산하는 기계로써 역할을 하므로)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녹색의 땅’이 자신에게 희망이며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맥스와 퓨리오사는 결국 임모탄 조의 광폭에 맞서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녹색의 땅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이미 구원이 될 수 없는 땅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때 맥스가 퓨리오사에게 말한다.
“희망을 갖는 건 실수야. 내 망가져버린 삶을 되돌릴 수 없다면 결국 미쳐버릴 거야.”(영화 매드맥스)
희망이란 유토피아를 말한다. 퓨리오사가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한 세계인 ‘녹색의 땅’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순간 ‘지금 여기’는 시시해진다.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이란 애초에 없었음을 깨닫고, 그들이 떠나온 ‘시타델’로 돌아간다. 이 장면에서 루쉰이 말하는 ‘희망’과 묘하게 겹친다.
루쉰도 한때 혁명을 꿈꾸며 세상에 대한 비분방개로 세월을 보냈다. ‘새 생명’이라는 의미를 지닌 『신생』이란 잡지 창간을 앞두고 있었으나, 실패를 맛보고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무료를 느끼게 된다. 이후 몇 년간 오래된 방에서 옛 비문을 베끼며 지냈다. 이런 삶에서는 무슨 문제니 주의니 하는 것들과 만날 일이 없었고, 이렇게 어물쩍 자신의 생명이 소멸해가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신청년』이란 잡지에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한다. 이때 루쉰은 말한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루쉰, 『외침』, 그린비)
이에 친구는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라고 답하고, 루쉰은 덮어놓고 친구의 희망을 말살할 수는 없었으므로 글을 쓰기로 한다. 루쉰의 철방에 대한 비유는 꽤 유명한 글이다. 여기서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희망’에 마취된 사람들이다. 유토피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 마취제의 힘으로 일생을 살아간다. 누군가 말하는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이 마취제에서 깨어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깨어났으나 불행하다. 마취제로 보았던 세상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젠 마취제에 기대 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행복이나 사랑, 돈 등을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어지는 것이다.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영화 매드맥스)
이것은 영화의 마지막 물음이다. 이 질문에 대해 루쉰의 글을 통해 대답하자면,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그냥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다. 쇠로 만든 철방은 절대 부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통념들과 싸우며 자유를 얻어야지, 있지도 않은 유토피아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헛된 희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에 대해 비관적인 루쉰도 자신이 말하는 ‘희망’이란 것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꾸준히 자기 검열을 해온 것이다.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런 글을 남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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