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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스크루지의 기적을 바라며

by Dreambike 2011. 1. 5.

소문난 구두쇠인 스크루지는 ‘돈’ 이외의 것과는 담을 쌓고 산다.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으며 폭리를 취해 돈을 버는 스크루지는 악명 높은 고리대금 업자이다. 그리고 하나 있는 직원 크래칫을 쩨쩨한 주급에 일을 부려먹는 인색한 고용주이다. ‘돈’에 미친 스크루지에게 크리스마스 따위는 시시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라고 떠들썩하게 구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만 난다. 하지만, 오랜 친구 말리의 유령과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유령을 만나면서 그는 새사람이 된다. 크래칫의 주급을 올려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여 그들이 빚 갚는 일 말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게 되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왜, 이런 달콤한 꿈이 실현되지 않는 걸까? 고용주가 양심적으로 월급을 책정하고, 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고, 기업이 기계 대신 사람을 신뢰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작다는 이유로 착취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이렇게 각박하지만은 않을텐데 말이다.

<88만원 세대>를 쓴 두 저자는 20대의 현실을, 그리고 곧 20대가 될 10대들을 걱정하며 썼다. 청년 백수 백만 명 시대라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너무 많이 듣고, 너무 오래 되어 고착화된 느낌이다) 시대에 우리는 쉽게 20대를 비난한다. 앞 세대보다 게으르고, 앞 세대보다 책을 읽지 않고, 창의적이지도 않고, 비루한 현실에 대해 저항할 의식도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20대는 왜 저러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한다. 그러니 백수가 늘고, 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금의 20대는 희망을 상실한 세대다. 사방팔방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그 희망을 잡는 일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겹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20대가 20대와 경쟁하는 ‘세내 내 경쟁’ 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40대, 50대와 경쟁하는 ‘세대 간 경쟁’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는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세대이다. 그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일자리가 줄고, 계약직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 20대를 더 못살게 굴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한 예로, 정규직으로 전환 예정이었던 KTX 여승무원들을 계약직으로 유지하며 멋대로 부려먹으려 한 것을 들 수 있다.) 아랫세대를 착취해야 윗세대가 차지할 영역이 확보되는 이상한 논리다. 하여 지금의 20대는 계약직이라는 고용 형태라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고, 취업에 실패해 자영업이라도 해보자 마음먹어도 프랜차이즈의 홍수 속에서 쓴맛을 봐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런 각박한 현실을 빼놓고 지금의 20대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10대는 어떨까? 중학교 때부터 6년 동안 인질극에 시달린다. 대학을 목표로 다양한 사교육에 휘둘리다가 자유를 찾은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처럼 비슷비슷하다. 대학에 입학했으니 좀 다르게 살려나 싶었는데, 또 똑같이 토익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자유를 이야기하고, 꿈과 모험을 이야기하던, 예전의 대학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붕어빵이 된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다고 치자. 세대 간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하고, 한국 사회는 다안성을 가진 인재가 없어 몰락을 경험하게 될 거다. 지금 GDP 몇 퍼센트 올랐다고 좋아해 봐야 한순간에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 GDP 마저도 현실성 없는 상위 10% 얘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현실적 대안을 얘기한다(혁명은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배제한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권리를 찾자고 얘기하고 싶지만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동화같은 대안이다. 스크루지처럼 정부와 산하 기관, 기업이 양심을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만이 아니라, 후세를 생각하는 대인배의 마음을 갖자는 것. 지금의 기성세대는 대체 어떤 유령을 만나야 지금의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실현하게 될까? (10대에게도 투표권을 주어야 하는 건가) 어떤 조건을 떠나서 지금 내 주머니 불리는 일 말고, 내 자식과 그 후손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정책을 세우라고 조언한다. 선진국의 사례를 드는 것이 반갑지는 않지만, 스웨텐은 20대를 위한 좋은 국가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출간 4년이 다 되어가는 <88만원 세대>를 이제야 읽었다. 출간 당시보다 더 절망스러워진 현실에서 이 글들을 읽다보니, 저자가 말한 조그만 희망조차 이미 파탄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기성세대는 여전히 "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다음 세대의 생존권까지 관심을 가지나?"라고 말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주도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을 예상해야 할 거다. 지금 현실에서 아랫사람에 대한 양보는 가족 내에서만 일어나고(자녀에 대한 헌신적 노력을 떠올려보라), 사회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양보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다 같이 산다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