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차리 추천북

책 VS 영화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by Dreambike 2011. 6. 13.

대체 언제였지.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싶었던.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하루키를 처음 알았고, 그의 매력에 흠뻑 취해 등장인물의 말투나 생활방식을 흉내내기도 했었다. 일본이 다시 보였고, 일본 소설을 즐겨 읽게 됐고, 일본 여행을 계획하게 하는 교두보 역할 같은 걸 했었다. 하루키는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상실의 시대>를 영화로 찍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그때의 흥분과 감동을 다시 느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늘 그렇듯 실망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섞이는 거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의아한 마음에 다시 책을 읽었다.

두어 번 정도 읽은 <상실의 시대>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처음 읽는 책처럼 느껴지는 거다. 주인공의 이름과 몇몇 스토리는 잔존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다 새로웠다. 나오코의 갈등과 고뇌, 와타나베의 말투와 유머, 미도리의 외설과 사랑, 나가사와의 진심, 레이코 여사의 털털함과 소녀적 감수성 등은 낯설었던 것.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젊었다는 것도 이제 알았다. 그때는 나도 꽤 어려서 그들이 나보다 훨씬 어른이라 생각했었다. 

    


말을 잃어버린 영화
물론 책의 내용을 영화에 모조리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을 너무 줄였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그 침묵에 대한 해석을 관객에게 양도한다. 그나마 책을 접한 사람은 <책>을 통해 그 침묵을 해석할 테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좀 의아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아쉬운 부분은 레이코 여사에 대한 표현이다. 책과 너무 다르게 그려진 데다가, 그녀에 대한 사연을 모조리 삭제해 버려 결말에 등장하는 와타나베와의 섹스 장면에서는 거부감이 들 정도였으니까.

모조리 빼 버린 웃음기

뭐, 영화가 꼭 웃겨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는 포인트를 발견할 때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타나베와 함께 방을 쓰는 결벽증 돌격대, 야한 농담을 시도때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레이코 여사, 외설적인 이야기를 엉뚱하게 풀어내는 미도리의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몰입을 방해하는 캐릭터

개인적으로 나오코와 레이코 여사는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세상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그렇지만 누구보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했던 나오코의 모습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 더 가관인 것은 레이코 여사. 철 없고 자유분방한 날라리 선생님 같은 사람을 사감 선생님처럼 만들어 놓았다. (아무리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에도 농담을 던지고 보는 성격인데) 뭔가 음흉한 느낌도 들고. 진지하고 엄숙한 영화 속 분위기를 이어가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해는 한다. 감독의 해석에 따른 거니까. 내 해석과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바란다. 이것과 다른 <상실의 시대>를.

<상실의 시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청춘이여, 마음을 다해 온몸으로 방황하고 사랑해라! 대략 이런 게 아닌가 싶다.
20대! 독립이 용인되는 그 무렵은 모두에게 설렘을 주지만 동시에 두렵고 무서운 시기이다. 하루키의 표현에 의하면 태엽 감는 생활(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 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살아가는 것)을 하는 것이 세상과 친해지는 지름길이지만, 그렇지 않은 청춘이 있고, 그것을 도와주지 않는 썩어빠진 사회 현실이 있다. 하루키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사회와 그로 인해 등장인물이 겪는 아픔과 고뇌를 말이다. 그때마다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상실’하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도, 말하고 있는 것 같다.